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2호(2009-01-05)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40:1
우순(愚巡)
2009. 2. 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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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를 불어넣는 말씀>.... "삶의 주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오늘 나눌 말씀은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삶의 주어이신 하나님"입니다. 기독교의 현관문은 창세기입니다. 창조신앙은 기독교의 뿌리이며 기독교의 기반이됩니다. 기독교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기독교의 시작은 창세기의 창조로 시작하고.......기독교의 완성은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로 끝납니다.
그 중에도 창세기 1장 1절은 기독교의 문을 여는 마스타 키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기독교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창세기 1장 1절로 열 때만 기독교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세계가 존재하게 되었고...인간이 출현하게 되었으며...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도 베풀어진 것입니다.
이 창조의 첫 구절에서 핵심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하나님이 삶의 주어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우리들의 삶의 주어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될 때 창조가 시작됩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의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박물관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고고학의 대상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철학적인 사변의 관념이 아니고 심리학적인 투사체의 허상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혼돈과 공허와 흑암 중에 있는 이들에게 빛을 선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높은 데 계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부터 그의 신학을 전개합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의 신학을 19세기의 이성주의 신학을 비판하고 정통주의로 회귀했다고 해서 신정통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또한 말씀과 계시의 신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매 주일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첫 고백도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고백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이 삶의 주어가 되야 합니다. 내가 삶의 주어일 때는 혼돈입니다. 공허입니다. 흑암입니다. 혼돈가운데서 방황하고, 공허함 때문에 우울하며, 흑암아래서 살 길을 잃어버리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삶의 주어가 되면 빛이 비춥니다. 혼돈의 방황이 끝납니다. 공허의 우울이 끝납니다. 흑암의 절망이 끝납니다. 그리고 살길이 열립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하는 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살길이 열리고 갈 바를 알게 되며 목적의식이 뚜렷해집니다. 하늘의 비전이 보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어로 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테초 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은 창조를 이어가십니다. 그 하나님을 삶의 주어로 사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無)의 상태입니까? 아니면 유(有)의 상태입니까? 만약 유라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무라면 무가 영원한 무가 아니고 유가 될 수 있음을 믿고 창조주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맡기십시요. 창조주 하나님이 무로부터 유를 창조하셔서 놀라운 일들을 베푸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유를 선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은 혼돈의 방황을 끝내고, 공허의 슬픔을 멈추며, 흑암의 젊망을 극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어이십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어로 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기도 아닙니다. 물질도 아닙니다. 세상 권력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기의 삶의 주어로 삼는 사람만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삶을 에덴동산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주어로 삼으십시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던 것 처럼 지금 여기서 다시 당신의 삶에 위대한 창조를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분은 삶의 주어이십니다. 우리들의 삶의 주어이십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저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삶의 주어로 삼게 하옵소서. 제 마음이 혼돈으로 방황하고, 공허로 슬프며, 흑암 때문에 길을 잃어 버렸사오니 빛을 주시옵소서. 제 삶을 전적으로 맡기오니 제 삶의 주어가 되시사 빛을 창조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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