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講論)/교회력과 예식 강론

<한국 여장로회 연합회 ‘23차 나라를 위한 기도회’ 특강 자료>2011-1214

우순(愚巡) 2011. 12. 8. 11:19

<한국 여장로회 연합회 ‘23차 나라를 위한 기도회특강 자료>

 

축제의 회복

 

     (성경본문 요한복음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2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으나 거기에 여러 날 계시지는 아니하시니라.”

 

<여는말>

 

     저는 오늘 말씀을 섬길 서철입니다. 현재 기독교대한감리회 상동교회 담임목사이며, 상동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법인 삼일학원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상동교회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민족교회이며, 삼일학원은 1903년도에 설립되어 수원 지역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민족학원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상동교회의 상동청년학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총칭하여 상동파라고 부릅니다. 담임목사였던 전덕기 목사를 비롯하여, 우당 이회영, 백범 김구, 이동녕, 이승만, 이준, 양기탁, 주시경 등 많은 우국지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상동교회는 신민회, 신흥무관학교, 헤이그 밀사 등을 주도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인 신앙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제 작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21~11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엮은 [축제의 회복]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국 여장로회 연합회 소속 장로님들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축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축제를 회복시킨 어머니

 

     오늘 첫 번 째 생각하는 것은 축제를 회복시킨 어머니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로 알려진 요한복음 21~11절에 나오는 주인공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움직여 더 좋은 포도주를 만들게 함으로 파장 분위기가 짙던 혼인잔치의 축제를 회복시킵니다. 저는 마리아를 축제를 회복시킨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신앙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가 되시기를 기도하시는 우리 장로님들이 정말 마리아처럼 축제를 회복시키는 어머니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리아의 가장 큰 역할은 예수님을 잔치집의 중심 무대로 나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3) 그리고 예수님과 하인들을 연결시켜서 더 좋은 포도주를 만들게 했습니다. (10) 예수님은 분명 잔치 집에 계셨습니다.(2) 그러나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가 파장이 되어 갔지만 예수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단적인 드러남이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4)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강권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5)

 

     어머니 마리아 때문에 예수님이 사건의 중심 무대에 서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곧 축제의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마리아는 축제를 회복시킨 어머니였습니다. 저는 어머니 장로님들을 통하여 잔치 집의 축제가 회복되기를 사모합니다. “축제를 회복시킨 어머니!” 지금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하나님의 사도들이십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는 개인이든 사회든 교회든 축제가 끝나가고 있는 아픔을 느낍니다. 잔치집의 흥을 돋우던 포도주가 떨어져 가는 것을 느낍니다. 들려오는 교권다툼의 소리, 사회의 반 기독교적인 정서, 자본주의의 천박한 수혜자로 전락한 교회의 물신숭배사상 등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물론 종북좌파들의 기획도 있을 수 있고, 종교간 갈등을 조장하는 황색언론도 있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일방적인 매도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우리들의 잔치가 파장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을 갖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는축제를 회복시킨 어머니!” 입니다.

 

2. 요한복음의 여성

 

   두 번 째로 생각할 것은 요한복음의 여성입니다. 요한복음은 사마리아 교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 교회는 유난히 여성의 역할이 두드러진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더 잘 믿고,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메시야를 만난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4), 나병 환자 나사로를 살려낸 마리아와 마르다(11),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12), 부활의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20) 등 복음의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보통 네 개의 줄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식(영지주의), 생명(신비주의), (세례종파), 그리고 여자입니다. 말씀으로 번역된 로고스와 충만과 안다는 말은 플라톤의 유출설에 근거한 헬레니즘적인 철학사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영지주의적인 지식의 빛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생명, 생명의 떡, 생명의 빛, 생명의 물, 영생 등등에 담겨진 생명사상은 불사의 존재가 되려 했던 동방의 신비주의 사상을 엿보게 합니다. 물은 요한복음은 물 복음서라고 할 정도로 결례의 항아리 물에서 수가성 우물물, 요단강의 세례물, 베데스다 연못 물, 디베랴 바닷물까지 이어집니다. 이는 요한의 세례종파를 반영하면서 성령세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은 복음이 모세의 율법의 땅으로부터 요한의 세례라는 다리를 거쳐 예수님의 은혜의 땅으로 넘어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때 물은 성령으로 승화되어집니다.

 

     그리고 여자입니다. 요한복음은 여성의 역할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된 것과 예수가 메시야이심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합니다. 중요한 선포, 핵심적인 복음의 증인은 여성들입니다. 여성은 요한복음에 흐르고 있는 네 물머리 가운데 하나로, 여성의 역할이 활발했던 사마리아 교회의 삶의 자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여성은 예수님을 삶의 중심 무대로 나오게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축제는 바로 예수님을 다시 우리들의 삶의 한 가운데 나오시게 하는 것입니다.

 

3. 우울증 거듭나기 : 축제의 회복

 

    그 다음 세 번 째 생각할 것은 우울증 거듭나기입니다. 우리의 축제를 회복시키기 위하여서는 사회가 안고 있는 집단적인 우울함을 치유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장로님들이 이 일을 잘 해주시리라고 기대합니다. 지금 이 사회는 우울합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쳤다고 하셨는데 과거에는 모든 병의 치유가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약한 것의 치유가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서울 생명의 전화에서 주최하는 생명사랑 밤길 걷기를 해마다 참석하고 있습니다. 자살 예방을 위한 행사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살로 인한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자살율은 아주 심각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살은 2009년도 사망원인 중 4순위입니다. 특히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사망원인 중에는 1순위입니다. 2009년도에 신종플루로 죽은 사람이 140명인데 자살로 죽은 사람은 15,413명으로 전년대비 2,555명 증가했습니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19.3%가 증가된 숫자입니다. 10년전에는 7위였는데 2009년도에는 4위로 올랐습니다. ,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다음입니다. 흔히 걱정하는 교통사고나 당뇨나 간질환이나 고혈압보다도 높습니다.

 

     상위 3대 원인이 고령화와도 연계되는 데 비해 자연사나 질병사와는 관계없는 10대와 20대와 30대에서는 자살이 사망원인 1위라는 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남녀 공히 1위입니다.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는 14.4명인데 자살은 31명으로 두 배가 넘습니다. 신종 플루나 교통사고등으로 걱정하는 것을 생각하면 자살은 큰 문제입니다. 이 수치는 합병증을 우려하는 당뇨로 인한 사망원인 보다도 높습니다. 당뇨는 10만명당 19.6명이지만 자살은 31명입니다.

 

     자살은 우울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저는 우울증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다가 데이비드 로젠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거듭나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 거듭나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외래 교수로 있는 이도희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습니다. 원제는 "Trandforming Depression"입니다. 이도희 선생의 번역대로 우울증 거듭나기이지요. 원제도 책을 읽는 동안 제 마음에 많은 생각을 주었는데, 부제가 더욱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Healing the soul through Creavity -창조성을 통한 영혼의 치유"입니다. 부제의 제목에서 보듯이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된 창조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저자와 역자는 C.G. Jung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해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의 네 가지 요인을 분석했습니다. 생물학적 요인, 심리학적 요인, 사회적인 요인, 실존적/영적 요인입니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우울증이 생화학적인 화합물 즉 신경전달물질의 농도 저하나 장애와 연관있음을 분석했습니다. 이것들은 3대 주요6 단가아민인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등입니다. 심리학적인 요인 으로는 리비도의 막힘(프로이트 ), 자궁으로의 퇴행- 영혼의 상실, 정신의 죽음()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요인으로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존적/영적 요인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젠의 치료방법은 영혼을 통한 치료방법입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다른 분석가들과 달리 네 번 째 요인인 실존적/영적 요인을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고 영혼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합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영혼을 모든 치료적인 노력으로 고려하며 삶의 의미 추구와 가치실현을 중시합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 방법을 이용합니다. 죽음과 재생입니다. 융의 방법은 죽음을 통한 재생입니다. 이 때 죽여야 하는 것은 자아이고 살려야 하는 것은 자기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거짓 자기와 참 자기입니다. 이것은 융의 분석의 도구인 아니무스(, 여성 안의 남성성)와 아니마(, 남성 안의 여성성)이고, 그림자와 페르조나입니다.

 

 

    저는 데이비드 로젠의 방법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의미가 있다고 느낍니다. 우울증 속에 담겨진 창조성의 발견, 우울증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기능들, 영적 요인의 가치와 영혼의 치료를 통한 우울증의 치료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죽음과 재생의 치료 여행을 통하여 죽이고 싶은 거짓 자기를 죽이는 상징적인 죽음을 통한 참 자기의 생명 살리기 등입니다. 융의 심리학과 로젠의 정신의학은 상징적인 죽음을 통한 치유를 설명합니다. 미술 치료, 치료 여행, 의미 추구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분명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진정한 죽음을 맛보면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스도안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죽이고 싶은 또 다른 자기의 모습입니다. 자아의 죽음을 통한 자기의 살아남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진정한 죽음과 진정한 살아남을 체험케 한다. 참 믿음으로 진정한 죽음을 경험하면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4. 평화통일의 성소

 

      제가 네 번 째로 준비한 것은 평화통일의 성소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민족교회였고 독립운동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주의의 천박한 수혜자이거나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고 있는 반역사적 집단으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눈길에 대하여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 우리들에 대한 사회의 이미지는 곱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현대 선교학에서 아주 중요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Image Mission입니다.

 

    교회가 민족교회로서 사회의 구심점을 유지하려면 독립운동-민주화 운동-통일 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족교회로서의 Image를 유지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는 신앙의 어머니들이 민족의 어머니 역할을 하시려면 독립운동-민주화 운동-통일 운동으로 이어지는 민족교회로서의 Image를 견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온 중요한 개념이 평화통일의 성소 개념입니다. 독립운동은 미래의 희망을 선포했던 믿음의 운동이었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의 악과 싸우는 미래의 희망운동입니다. 독립운동은 당시에 시대의 앞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희망의 운동이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저는 반공주의자입니다. 제가 믿는 기독교신앙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맑스 레닌을 좇는 민중민주주의 계열의 공산주의자들은 역사의 동인(動因)을 물질로 보는 유물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맑스-레닌의 사상을 변형시킨 북한의 주사파는 역사의 동인을 사람으로 인식하는 주체사상(主體思想)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역사를 움직이는 역사의 동인을 하나님이시라고 인식하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목사로서 저는 결코 친북좌파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민주개혁세력은 다릅니다. 교회는 세상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을 생명처럼 사랑하여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우리는 이 세상의 죄악과 타락한 풍조를 멀리하는 것이지, 세상 자체를 미워하고 정죄하지 않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세워 가야할 우리의 존재기반입니다. 독재 정권 하에서 우리 교회가 민주화 운동의 성소였더라면 독립운동의 성소를 이어 여전히 한국 사회의 구심점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세대들이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글들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소위 안티 기독교 세력들이지요.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종교적 도전, 이단적 발호, 배타적 감정 입니다. 종교적 도전은 타 종교가 기독교의 선교활동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단적 발호는 이단들이 은근히 기독교를 폄하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오히려 괜찮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가 문제입니다.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 감정을 가진 '안티-기독교 세력'들은 기독교의 행태에 실망하거나 불만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불의와 싸워서 정의를 수호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민중의 이웃이 될 때, 100년전의 우리 교회처럼 민족교회로서 민족공동체의 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지금은 그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세상의 빛 운동이 평화통일의 성소운동으로 승회되어야 합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에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내 성소가 영원토록 그들 가운데에 있으리니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을 열국이 알리라 하셨다 하라"(37:26~28)

 

<닫는말>

 

     신앙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제가 바라기는 우리 장로님들이 믿음으로 기도하시면서, 축제를 회복시키시는 어머니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모델은 요한복음의 여성이며, 그 첫 번째 여성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리고 축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우울증 거듭나기의 선구자가 되셔야 하고, 한국 교회를 평화통일의 성소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력란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 어머니 장로님들의 강력한 기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