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제사(히13:15) 2013-0714 주일
찬송의 제사
<히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축원합니다.
오늘은 “찬송의 제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하겠습니다.
<히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브리서는 믿음의 성경입니다.
특별히 후반부인 9장부터 13장까지는 믿음의 절정을 이룹니다. 9장에서는, 믿음의 근거가 뭐냐? 예수의 피다. 짐승의 피가 아니고 예수의 피가 우리의 믿음의 근거다. 10장에서는, 믿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예수의 피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나가야 하겠느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1장에서는, 믿음의 증인들을 열거합니다. 믿음으로 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사람들을 다 이야기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 성도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12장에서는, 믿음의 대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려는 성도들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선포합니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우리의 신앙생활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시면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나눌 때 “주께서는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누가 나를 해할 것이냐 내게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믿음의 주님, 믿음의 창시자이며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1. 찬송의 제사]
1) 히브리서 13장은 믿음의 진정성입니다.
참 믿음은 믿는 대로 사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구체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찬송하며 사는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은 그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온 누리에 가득하게 고백합니다.
2) 시편 150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숨 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하라!
<시편 150편> 1 할렐루야.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하늘 웅장한 창공에서 찬양하여라. 2 주님이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더없이 위대하시니, 주님을 찬양하여라. 3 나팔 소리를 울리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거문고와 수금을 타면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4 소구치며 춤추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현금을 뜯고 피리 불면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5 오묘한 소리 나는 제금을 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큰소리 나는 제금을 치면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6 숨 쉬는 사람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3) 초대교회는 매일 매일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마다 하나님은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해 주셨습니다.
<행2:46~47> 46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찬송의 제사는 구원받는 성도를 날마다 더하게 합니다. 초대 교회는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해 주셨습니다. (행2:46~47) 찬송이 살아 있는 가정, 찬송이 살아 있는 교회에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구원받는 성도가 날마다 더해집니다. 하비 콕스는 “영성, 여성, 음악”에서 “찬양이 살아 있는 교회에 성령이 역사하고,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가 살아 있다”라고 강변합니다.
4) 찬송은 기독교의 제사입니다.
히브리서의 제사는 찬송의 제사입니다. 히브리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히브리인들의 믿음은 제사 중심이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소제 등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찬송의 제사입니다.
모든 종교에 희생제사(예배)가 있습니다. 성경을 종교학적으로 보면 희생 제사의 형태가 바뀌는 과정을 봅니다. 제사의 형태가 인간 희생 제사 –짐승 희생 제사 – 하나님 희생제사로 바뀝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려던 제사는 인간 희생 제사의 흔적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번제는 짐승 희생 제사의 전형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하나님 희생 제사의 절정입니다. 제사의 목적은 사람 살리기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는 제사가 인간 희생 제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짐승을 죽이는 제사가 짐승 희생 제사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을 죽이는 제사가 하나님 희생 제사입니다.
기독교의 위대함은 바로 이 하나님 희생 제사에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죽인 것입니다. 스스로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의 절정입니다. 사랑의 극치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인간을 죽이지도, 짐승을 죽이지도, 신을 죽이지도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을 위하여 아들의 형태로 자신을 죽이셨기 때문에 아무도 죽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의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찬양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찬송의 제사, 찬미의 제사, 찬양의 제사는 사랑의 극치를 이루신 하나님을 최고라고 제일이라고 가장 위대하신 분이라고 칭송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온누리에 전파하는 최고의 증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릴 제사는 찬송의 제사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찬송의 제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증언)라고 말씀합니다.
5) 찬송의 제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찬송(개역개정), 찬미(개역한글), 찬양(표준새번역)은 다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높인다는 칭송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우리들의 입술로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십계명 중 하나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것이고(출20: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이름의 창대’였으며(창12:2), 성전건축의 목적은 하나님의 이름을 택한 곳에 두기 위함이었습니다.(왕상5장~9장)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단순한 표기가 아니라 존재 자체였습니다. 찬송의 제사는 바로 하나님 존재 자체인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2. 찬송의 체험]
1) 찬송의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합니다.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이라고 하는 찬송가는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의 부탁을 받고 오스틴 마일즈(C. Austin Miles)가 작사 작곡한 찬송가입니다.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은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안질로 인해서 실명합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 얻은 외동딸과 사위가 폭발사고로 죽게 됩니다.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은 극심한 절망에 빠져 고통스럽게 살다가 절친인 오스틴 마일즈(C. Austin Miles)에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찬송가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체험하고 싶었던 거지요. 오스틴 마일즈(C. Austin Miles)는 요한복음 20장을 묵상하다가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이 찬송가를 만들어 아담 가이벨(Adam Geibel)에 줍니다. 오스틴 마일즈(C. Austin Miles)는 부활의 아침 절대절망에 빠져 무덤을 찾아갔던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나오는 절대희망을 체험한 것을 찬송으로 만들어 아담 가이벨(Adam Geibel)에게 준 것입니다. 이 찬송을 듣고 절대절망에 빠져 있던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은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를 체험하고 큰 위로를 받습니다.
2) 찬송가 442장 가사입니다.
1.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을 알 사람이 없도다.
2. 그 청아한 주의 음성 우는 새도 잠잠케 한다 내게 들리던 주의 음성이 늘 귀에 쟁쟁하다
3.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3) 오스틴 마일즈의 고백입니다.
“1912년 3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사진기와 현상기구, 그리고 오르간이 있던 암실에 앉아서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요한복음 20장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시는 광경은 나를 매혹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읽을 때 나도 그 장면에 끼여 있는 것과 같은 생각이었고, 마리아가 주님 앞에 무릎 꿇고 ‘랍오니여!’라고 부르던 극적인 순간에 대한 말없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4) 찬송가 442장의 원문은 좀 더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원문은 외로움의 절망과 주님의 위로가 더 깊게 다가옵니다. 원문을 직역해보았습니다.
1절, I come to the garden alone (나는 혼자 동산으로 나왔습니다) While the dew is still on the roses (이슬이 아직 장미꽃 위에 맺혀 있는 동안이었죠) And the voice I hear falling on my ear (나는 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The song of God discloses (하나님의 노래가 들렸습니다.)
(후렴) And he walks with me(주님은 나와 함께 걸으셨습니다.) And he talks with me (주님은 나와 함께 말씀하셨습니다) And he tells me I am his own (주님은 내게 너는 내 것(주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And the joy we share as we tarry there(우리가 동산에 머무는 동안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None other has ever known (아무도 결코 알 수 없는 우리만의 기쁨을)
2절, He speaks and the sound of his voice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의 소리가) Is so sweet the birds hush their singing( 얼마나 달콤한지 새들이 자신들의 노래 소리를 낮추었습니다) And the melody that he gave to me (주님이 내게 주신 그 멜로디가) Within my heart is ringing(내 마음 속에서 아직도 울리고 있습니다.)
3절, I'd stay in the garden with Him(나는 주님과 함께 동산에 머물고 싶습니다.) Though the night around me be falling, (비록 어둠이 내 주변에 드리워질지라도) But He bids me go; (주님은 내게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through the voice of woe,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His voice to me is calling. (나를 향한 주님의 음성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5) 찬송할 때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얻습니다.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했습니다. 어제 원문을 직역한 것을 읽으면서 찬송 442장을 여러번 들었는데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의 모습과 마리아의 모습과 그리고 1912년 3월에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오스틴 마일즈(C. Austin Miles)의 경험이 오버랩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저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체험했습니다.
가사 한구 절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 어둠에 내게 깃들었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던 그 음성이 내게 들리고, 새들조차도 소리를 낮추어서 지저귈 정도로 내 마음 속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는데, 주님은 나와 함께 걸으셨고, 주님은 내게 말씀해 주셨고, 주님은 내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그래서 주님께서 계속해서 내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내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 찬송가를 하나님께 부르면서 위로를 받았을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오스틴 마일즈는 하나님께는 찬송의 제사를 친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을 전했습니다.
우리 다 같이 조용히 눈을 감고 한 번 불러보실까요. 그때 절망에 빠졌던 한 사람이 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받았을 위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특별히 3절, “비록 어둠이 내 주위에 깃들고 있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이 구절이 마음에 더 많이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후렴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아담 가이벨(Adam Geibel)처럼 절대적인 절망의 상태에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이 찬송을 부르시면서, 이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위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상동교회 이 예배 자리가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만났던 그 자리가 되기를 바라고, 오스틴 마일즈(C. Austin Miles)가 요한복음 20장을 읽으면서 은혜 받았던 1912년 3월이 되기를 바라고,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이 주님이 자기와 함께 동행 하시면서 말씀해 주시는 위로의 자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에 돌아가셔서 살아야 될 삶의 자리가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주님께서 ‘가라’ 그렇게 명령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주께서 나를 돕는 자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도다. 사람들이 내게 어찌할 것이냐. 나를 어찌 해할 것이냐. 그런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이 한 주간도 세상에 나가서 승리 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나눌 말씀은 “예수로 말미암아”입니다. 성경은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고 말씀합니다. 다시 히브리서 본문을 읽습니다.
<히13: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 찬송의 제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님이시며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모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합니다. 찬송의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찬송의 제사도 예수로 말미암아 드립니다. 찬송의 제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드리는 제사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제사가 짐승을 잡아 바치는 번제 중심이었지만 기독교인들의 제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드리는 찬송 제사입니다.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복음의 사건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행복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지며, 예수로 말미암아 감사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참고 견딥니다. 성경은 성도를 ‘예수로 말미암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히1138) 찬송의 제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입니다.
2) 믿음의 확신도 '예수로 말미암'아 얻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에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고전3:4~5>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찬송을 부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만족을 확신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동행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늘 이 어려움을 이기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악 가운데서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합니다.
3) 선교사역도 '예수로 말미암아' 섬깁니다.
지난 주에 스리랑카에서 온 박종건 선교사님의 선교편지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님의 편지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선교사역의 진정성’으로 가득했습니다. 목사님은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 등에 기도회를 인도하시고, 심방하시고, 예배당을 재건축하시고, 동부 기숙사에 가서 우리가 보내는 장학금을 전달하셨답니다.
그러면서 선교사님은 스리랑카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렇게 전해오셨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되지만 혹시 개인적으로 도우실 의향이 있으면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매정하게 약속을 딱 끝낼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 앞섭니다.” 이제 연말이 되면 우리가 약속한 3년 동안의 기숙사 헌금이 끝나는데 기숙사의 장학금을 다 끝내고 돌아오려고 하니까 그 아이들이 눈에 밟혔던 모양입니다.
또 스리랑카의 노동자들을 바라보면서 깊은 아픔을 전해오셨습니다. 스리랑카에서 홍차 잎을 따는 노동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인데 그나마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 홍차 잎조차도 따지 못하자 사우디와 카다르 같은 부유한 아랍세계로 가정부 일을 하러 간답니다. 선교사님은 떠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이 아파하셨습니다. “떠나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저는 편지를 읽으면서 선교사님이 선교사역을 하시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시는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느꼈습니다. 선교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깊은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돌보시고 계십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선교사역도 예수로 말미암아 섬기는 헌신입니다.
[4.찬송의 능력]
이제 찬송의 능력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찬송의 제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1) 찬송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합니다
<시편 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시편 118편 25절에서 유래가 된 초막절과 예루살렘 입성할 때 불렀던 호산나는 찬송 중에 찬송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 찬송을 부르면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달라고 간구하는 마음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2) 찬송은 치유의 간증입니다.
성전미문에 앉았던 지체장애우가 사도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럴 때에 일어나서 성전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치유를 간증하는 입술의 열매가 됩니다.
<행3:6~10>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3) 찬송은 이방인들의 고백입니다
<행13: 46~49> 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할 때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함께 찬송했습니다. 여러분 찬송이 얼마나 놀라운지 아십니까? 이 찬송은 우리 기독교인들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 찬송이 불려지는 곳에서 이방인도 따라 부릅니다. 저는 지난 주중에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심방을 했습니다. 기독교 병원에 가보면 1층에서 찬송을 부릅니다. 그 때에 앉아 있는 환우들을 보면 기독교 신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불신자들도 많습니다. 그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체험하곤 합니다.
4) 찬송은 옥문을 엽니다.
<행16:24~26>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에 그들이 기도하면서 찬송을 하니까 옥문이 열렸습니다.저는 고등학교 때에 안이숙 여사의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안이숙 여사가 일본에 의해서 죽임을 당할 지경에 놓였을 때 , 이제 내가 죽게 되었구나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옥중에서 찬송할 때에 8.15 해방을 체험합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동안에 그의 옥문이 열린 것이지요.
5) 찬송은 하나님의 위로를 풍성케 합니다.
<고후 1:3~5>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위로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찬송가 442장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 위로의 하나님이 위로를 넘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찬송의 제사를 부를 때 눈물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6) 찬송은 신령한 복을 받게 합니다.
<엡 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찬송은 감사를 넘쳐나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할 때에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엡 5:10~21>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골 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여러분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럴 때에는 우리의 입술 속에서 정말 정죄하는 말만 나오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찬송할 때에는 감사가 넘쳐납니다. 아담 가이벨(Adam Geibel)이 이민자의 슬픔에, 8살의 실명에, 외동딸과 사위의 죽음에 아무 것도 남은 것도 없고 자신의 육체는 망가져 버렸는데 무엇을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찬송을 부를 때 감사가 넘쳐 났습니다.
8) 찬송은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찬송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벧전 1:3~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노랫말과 가수의 운명과의 상관관계를 아십니까? 석사학위 논문 가운데 ‘노랫말과 가수의 운명’에 관한 논문이 나왔는데, 가수들이 부르는 노랫말이 가수의 운명과 서로 연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이난영 씨 같은 사람들은 그 자신들의 노랫말과 비슷한 운명을 살았습니다. 계속해서 우울한 노래를 부르고, 슬픈 노래를 부르고, 아픈 노래를 부르면 마지막에 그 삶이 그렇게 끝나간다는 것입니다. 요절하고 자살하고 그 삶이 아프게 끝나갑니다.
9) 찬송은 산 소망을 갖게 합니다.
<벧전 1:3~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찬송은 산 소망이 있게 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 우리가 정말로 힘들고 어려워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는 삶을 살지라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걸어가면 소망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 주간 찬송하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일부터 집에서 한주간 보내시는 동안에 우리의 입술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찬송의 제사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치유의 간증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둘러싸고 옥죄고 있는 옥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동안에 여러분의 입술에 감사가 풍성하게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산 소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드리자.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증언이라. 여러분이 이 한 주간 찬송하며, 찬송의 제사를 드리시며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