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講論)/부흥회와 세미나 강론

제천시 목회자-장로 컨퍼런스 세미나 1강(우직한 순례자)

우순(愚巡) 2022. 3. 10. 08:29

제천시 목회자-장로 컨퍼런스 세미나

 

일시: 20211119-20

장소: 청풍레이크호텔

주최: 제천시성시화운동본부(본부장 박정민 목사)

후원: 제천시기독교연합회, 교경협의회(최영준 목사)

주제: 위로와 비전

 

 

1강 우직한 순례자(2021-1119)

 

[84:5~7]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1)'눈물 골짜기'를 지나갈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동대문교회 담임목사 서철입니다. 부족한 사람을 <제천시 목회자- 장로 컨퍼런스>의 강사로 초대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하지만 저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비전이 제천시 목회자님들과 장로님들과 모든 교회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습니다.

 

[마태복음서 5:4]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받은 하나님의 상속자들에게 큰 위로 주십니다.

 

[6:]17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상속받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더욱 환히 나타내 보이시려고, 맹세로써 보증하여 주셨습니다. 18 이는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세상에서 피하여 나온 사람들인 우리가, 이 두 가지 변할 수 없는 사실 곧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의지하여 큰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시고 맹세하실 때에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정신 중의 하나가 <공감>인데 제천시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목사-장로 집안의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지키시는 신앙심에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 집안은 여러분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계십니다. 제 선친은 35세에 감리교회 장로님이 되셨다가 40세에 목회자가 되셨고, 저와 제 남동생은 감리교회 목사이고, 첫째 매제와 사위는 백석측 목사이고, 셋째 매제는 통합측 목사이고, 외가 형님들과 조카와 둘째 넷째 매제가 장로이고, 조카사위는 성결교회 목사이고, 제 아들은 독립교회인 호주 높은뜻 브리즈번 교회의 전도사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뵈면 공감하는 부분이 좀 있습니다. 그런 공감의 마음으로 강의를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2021년도 제천시 목회자-장로 컨퍼런스의 주제는 <위로와 비전>입니다. 이 주제는 코로나 이후의 교회 상황을 잘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비전이 필요함을 강변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은 위로를 중심으로 강의를 하고, 내일은 비전을 중심으로 강의를 하겠습니다. <위로와 비전>이라는 주제는 <기초석과 기둥> 같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통하여 교회의 기초석을 다시 세우고, 하나님의 비전을 통하여 교회의 기둥을 다시 세우려는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펼치는 말>

 

1. 목회자와 장로는 <우직한 순례자>입니다.

 

1) 위로를 기다리는 자

 

우리는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순례길을 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우직한 순례자>입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우직한 순례자>입니다.

 

10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시온산을 향해 거룩한 삶의 길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우직한 순례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우직>이라는 말이 뜻하는 <올곧게 한길로만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 때문입니다. 조금은 융통성이 없지만, 때로는 고집스럽기도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시온산을 향해 반듯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우직한 순례자였던 시므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던 시므온은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누가복음서 2: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노아를 아시지요? 우직한 순례자였던 노아의 이름 뜻은 위로 그 자체입니다. 세상을 구원한 노아는 세상의 위로 그 자체였습니다.

대홍수의 기후 격변기에 세상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생명을 이어가게 한 씨앗의 사람이요 근원의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노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직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순례길을 걸어간 노아의 이름을 위로라고 지어주었습니다.

 

[5:28~29] 28 라멕은 백여든두 살에 아들을 낳았다. 29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예수님의 족보도 위로가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인 보아스는 룻을 위로하였습니다.

 

11 보아스가 룻에게 대답하였다.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12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 13 룻이 대답하였다. "어른께서 이토록 잘 보살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른께서 거느리고 계신 여종들 축에도 끼지 못할 이 종을 이처럼 위로하여 주시니, 보잘것없는 이 몸이 큰 용기를 얻습니다."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을 축복한 사무엘의 출생에는 엘가나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엘가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위로하였고 후에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삼상1:8 그럴 때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였다. "여보, 왜 울기만 하오? 왜 먹지 않으려 하오? 왜 늘 그렇게 슬퍼만 하는 거요? 당신이 열 아들을 두었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만큼 하겠소?“

 

사도 바울을 교회의 공식 석상으로 인도한 바나바의 이름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위로의 아들이 사울을 위로하여 바울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도행전 4:36]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하나님은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직한 순례자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우직하게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셨습니다.

 

2) 위로자 하나님

 

하나님은 스스로 위로하는 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서 51:12] "너희를 위로하는 이는 나, 바로 내가 아니냐? 그런데 죽을 인간을 두려워하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하나님은 누가 너를 위로하겠는나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위로할 자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상황이 극한 상황이 되면 사람의 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으로는 위로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의 형편 때문에 위로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가 너희를 위로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끝까지 위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51:19]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은 굶주려 죽었다. 이 두 가지 재난이 너에게 닥쳤으나, 누가 너를 두고 슬퍼하겠느냐?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이사야서 52:9]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로하시겠다고 선포하십니다.

 

[스가랴서 1:17] 너는 또 외쳐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 성읍마다 좋은 것들로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다시 한번 시온을 위로하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내가 택한 내 도성이 될 것이다.'“

 

시편 11950절을 보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로하십니다.

 

[시편 119:50]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달래 줍니다.

 

[시편 94] 18 주님, 내가 미끄러진다고 생각할 때에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듭니다. 19 내 마음이 번거로울 때에는,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하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72:] 19 하나님, 주님의 의로우심이 저 하늘 높은 곳까지 미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그 어느 누구를 주님과 견주어 보겠습니까? 20 주님께서 비록 많은 재난과 불행을 나에게 내리셨으나, 주님께서는 나를 다시 살려 주시며, 땅 깊은 곳에서, 나를 다시 이끌어내어 주실 줄 믿습니다. 21 주님께서는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달래 줍니다.

 

[시편 94] 18 주님, 내가 미끄러진다고 생각할 때에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듭니다. 19 내 마음이 번거로울 때에는,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하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72:] 19 하나님, 주님의 의로우심이 저 하늘 높은 곳까지 미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그 어느 누구를 주님과 견주어 보겠습니까? 20 주님께서 비록 많은 재난과 불행을 나에게 내리셨으나, 주님께서는 나를 다시 살려 주시며, 땅 깊은 곳에서, 나를 다시 이끌어내어 주실 줄 믿습니다. 21 주님께서는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주신 주님의 말씀 중에 자주 언급되는 말씀이 <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안다! 주님이 아신다는 이 말씀 속에는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의 환난을 알고, 고난을 알고, 어려움을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편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2:2] 나는 네가 한 일과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 또 나는, 네가 악한 자들을 참고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과,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낸 것도, 알고 있다.

 

[2:9]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2:13] 나는 네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또 내 신실한 증인인 안디바가 너희 곁 곧 사탄이 살고있는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2:19] 나는 네 행위와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오래 참음을 알고,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안다.

 

[3:8]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보아라, 내가 네 앞에 문을 하나 열어 두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다.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

 

 

3)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에 대하여 찬양대를 인도하던 고라 자손들은 저 유명한 시편 84편을 남겼습니다. 시편 84편은 예배의 기쁨을 노래한 찬양시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예배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시편 84편은 새로운 느낌으로 깊은 위로를 느끼게 합니다. 제가 새번역으로 시편 94편을 읽어보겠습니다.

 

1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3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4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셀라)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1)'눈물 골짜기'를 지나갈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8 주 만군의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야곱의 하나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셀라) 9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10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11 주 하나님은 태양과 방패이시기에,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12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주님께 힘을 얻고 더 얻어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저는 시편 845절에서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을 우직한 순례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에서 살기를 더 원합니다.(84:10) 이 우직한 순례자들은 하나님의 집 성전의 문지기만 되어도 좋아합니다. (84:10) 하나님은 이들이 눈물 골짜기를 걸어갈 때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84:11)

 

저는 시편 84편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은 위로를 경험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저는 지난 2년 동안 시편 84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였습니다.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1)'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올라야 합니다.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이고,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한동안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교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교회는 예배의 자유가 사라지고 교회의 공동체성이 사라지는 위기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절실합니다. 하나님은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제천시 모든 교회와 목회자와 장로님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위로: 함께하심

 

1) 친구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우직한 순례길의 좋은 길벗입니다. 우직한 순례자의 최대 시험은 고독입니다. 그리고 고독한 순례자에게 예수님은 좋은 친구이십니다. 그것도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는 좋은 친구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로 맞아주셨고 아버지에게 들은 것을 다 알려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예수님이 친구이심을 선포한 백미의 말씀입니다.

 

[15:13~15] 13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이다. 15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명심보감의 친구 편에 보면 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주식형제천개유 급난지붕일개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술을 먹고 밥을 먹으며 형님동생할 때는 친구가 천명도 넘지만 위기를 닥치면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말입니다. 욥기서의 세 친구조차 욥의 위기 상황에서는 상처를 낼 정도니 위기 상황을 맞으면 진짜 친구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맞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나사로를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복음서 11:11] 이 말씀을 하신 뒤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 친구 나사로는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시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서 11:19]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예수님은 우직하게 순례길을 걸어갈 순례자들을 친구라고 부르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 4 "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5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보여 주겠다.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7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2) 임마누엘 예수님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절정은 <함께하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직한 순례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는 <함께 하심>입니다. 존 웨슬리는 죽을 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받을 가장 큰 위로입니다. 친구이신 예수님은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8]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17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8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의 이름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서 1: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시고 억눌린 사람들을 치유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0: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이신 예수님, 스스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보여주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3) 하나님이 함께하신 사도들

 

사도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증인들입니다. 우직한 순례자의 표상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총회인 사도행전 15장의 사도총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들을 보고 하였습니다

 

[새번역 제 15 장 예루살렘 회의] 1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신도들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2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 보게 하였다. 3 그들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가면서, 이방 사람들이 회개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의 모든 신도들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4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일들을 모두 보고하였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 마지막 인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하는 인사>였습니다

 

[로마서 15:33]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로마서 16:20]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수셔서 여러분의 발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고린도후서 13:11] 끝으로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십시오

 

시온의 순례길을 우직하게 가는 목회자와 장로님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고 그 받은 위로의 힘으로 주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로하시기 바랍니다.

 

1) 이사야의 위로와 복음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였습니다.

 

[이사야서 40:1]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성경학자들은 흔히 이사야를 둘로 구분합니다. 1 이사야서와 제2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66권 중에 1장에서 39장까지는 구약적인 내용을 담은 제1 이사야라고 하고, 40장부터 66장까지는 신약적인 내용을 담은 제2 이사야서라고 합니다. 이사야 401절은 제 2 이사야서의 표제어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이사야는 계속하여서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였습니다. 복음은 위로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이사야서 49:13] 하늘아, 기뻐하여라! 땅아, 즐거워하여라! 산들아, 노랫소리를 높여라.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이사야서 51:3] 주님께서 시온을 위로하신다!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신다. 주님께서 그 광야를 에덴처럼 만드시고, 그 사막을 주님의 동산처럼 만드실 때에, 그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깃들며, 감사의 찬송과 기쁜 노랫소리가 깃들 것이다.

 

2) 바나바의 위로와 이방인 구원

 

바나바의 위로가 이방인의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는 박해자였다가 회개한 사울을 위로하여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새롭게 썼습니다.

[사도행전 9:27]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로 데려가서,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일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성령은 이 둘을 따로 세워 이방인을 구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2]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위로의 아들 바나바와 위로를 받은 바울의 복음전도를 들은 교회는 성령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27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로 데려가서,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일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8 그래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루살렘을 자유로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였고, 29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과 말을 하고, 토론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꾀하였다. 30 신도들이 이 일을 알고, 사울을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다. 31 그러는 동안에 교회는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온 지역에 걸쳐서 평화를 누리면서 튼튼히 서 갔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성령의 위로로 정진해서, 그 수가 점점 늘어갔다.

 

3)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서로 위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로마서 15:5]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하시고,

 

[고린도전서 14:3]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덕을 끼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고린도후서 1:4]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고린도후서 1:6]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고린도후서 1:7] 우리가 여러분에게 거는 희망은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 위로에도 동참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7] 그러니 여러분은 도리어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7:4] 나는 여러분에게 큰 신뢰를 두고 있으며, 여러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고린도후서 7:6] 그러나,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7:7] 그가 돌아온 것으로만이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또 나를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그가 전해 줄 때에, 나는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7:13] 그래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또한, 우리가 받은 위로 위에 디도의 기쁨이 겹쳐서, 우리는 더욱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러분 모두로부터 환대를 받고, 마음에 안정을 얻었던 것입니다.

 

4) 바울의 위로의 근거는 부활의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죽은 사람의 부활 [살전 4] 13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잠든 사람의 문제를 모르고 지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소망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슬퍼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9)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16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말로 서로 위로하십시오.

 

 

<맺는 말>

 

1)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의 시로 예배의 기쁨을 노래한 찬양시입니다. 성전을 사모하면서, 성전을 향하여 순례길을 오르면서, 성전의 아름다움과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의 기쁨을 노래한 시입니다.

 

2) 지금 교회는 코로나로 인하여 예배의 자유와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영적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배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살았습니다. 언제나 갈 수 있는 예배당, 내가 가면 갈 수 있는 예배당이었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예배당에 갈 수 없는 부자유를 경험했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목사님들 중에는 설교자로 예배당에 가시고, 우리 장로님들 중에는 경영자로 예배당에 가셨는데 예배자로 예배당에 오시는 것을 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잊고 있었던 <예배의 자유와 예배의 기쁨>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봅니다.

 

3) 예배자로 서는 순례자의 마음을 다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지키는 거룩한 순례자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순례길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순례길입니다. 우직하게 <하나님의 집 문지기라도 좋사오니>의 마음으로 순레길을 가시면 하나님의 위로를 크게 받을 것입니다.

 

[84:10]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시편 84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목회자와 장로는 우직하게 시온의 순례길을 끝까지 완주할 것입니다. 우직한 순례자, 그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84]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1)'눈물 골짜기'를 지나갈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1)'눈물 골짜기'를 지나갈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