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을 멀리 하라(2011-0320) 주일 설교
(2011-0320)
이단을 멀리하라
(디도서 3:9~11)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오늘은 “이단을 멀리하라”는 말씀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전하게 되었냐면 그것은 시대의 요청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아직 신천지의 문제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있지 않지만 각교회들이 신천지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혼란의 직면에 있기 때문에 우리교회가 예방차원에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합니다. 교회도 건강할 때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신천지에 관한 문제가 없을 때 오히려 우리가 “이단을 멀리하라”고 하는 말씀을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단 문제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등장합니다. 통일교가 한 번 지나갔고, 전도관이 한 번 지나갔고, 또 다미선교회가 한 번 지나갔고, 구원파가 지나갔고, 또 한 동안은 구원파의 그 아류들인 기쁨소식교회의 박옥수 집단이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또 유광수의 다락방 전도가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한편으로는 짜증이 나기도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만성이 되기도 하는 양면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짜증이 나는 것은 정통교회에 다니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사회적으로 선교사역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기 때문에 짜증이 납니다. 만성이 되는 경우는 한 두 번이 아니니까 하고 우리가 이단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옛말에 ‘무병장수할 것 같지만 사실은 일병장수하고 무병단명한다’는 말처럼 경각심을 잃어버리면 건강하던 사람이 급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작은 병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그것 때문에 몸을 조심하다가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경각심을 잃어버리게 되면 이단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유관기관 때문에 가끔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단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반듯한 교회이기 때문에 이 교회가 참 좋은 교회입니다. 혹시 우리교회를 나오는 교인들 가운데 너무 교회가 오래되다 보니까 새가족에 대한 사랑이 좀 부족한 것 같다. 또 회의할 때 보니까 이것은 교회가 아닌 것 같아 실망된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낙심이 되시는 분들이 있다고 하면 시각을 조금만 교정하셔서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교회가 일을 많이 하다보니까, 접시를 닦다가 접시를 깨뜨릴 수 있는 것처럼, 일감이 많다보니까 격렬한 토론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단에 빠진 것이 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상동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이단에 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자산입니다.
신흥교회는 그런 점에서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교회가 주택가에서 신흥교회로 급성장하면 좋은 교회도 많지만 자칫 잘못하면 목사의 사유화가 일어날 수 있고 장로들의 관료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유화와 관료화의 틈을 비집고 교회가 이단에 빠질 수도 있고 이단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상동교회가 밋밋해 보이고 딱딱해 보이는 면이 있지만 견고한 면이 있습니다. 이런 양면성을 꼭 생각하셔서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하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상동교회 출석하시는 자긍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그 징조 가운데 하나가 나를 사칭하는 사람들,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마태복음 24장은 예수님의 묵시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재난의 징조를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그리고 7절에는 지진이 있을 것이다. 8절에는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다. 그러나 14절에 시작은 되었지만 끝은 아직 아니니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져야만 그때가 끝이다. 그리고 23절에 가보면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예수님의 예언이 가지고 있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는 이단의 등장,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들의 등장, 그 사람들이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는 예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때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미혹하는 방법은 큰 표적과 기사입니다.
인간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여러분이 전공하시는 여러분의 전공을 따라서 철학적 인간, 법률적 인간 여러 가지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이야기하고 있는 예배 자리에서 종교적 인간, 조금 더 좁히면 기독교적인 인간의 모습은 원죄의 본성아래 약점을 지닌 유한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유한한 인간의 약점 가운데 하나가 미혹당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경각심이라는 말을 왜 여러분에게 드리냐면 우리 자신은 건강하다고 하는 순간 건강이 상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단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가 이단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마치 지난 주에 인용했던 하이데거의 말처럼 “모든 사람은 죽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간격 속에서 고통을 느낀다는 말 아래 그런 구도를 차용해본다고 한다면 우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아서 이단들이 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하는 그 갭의 착각 속에서 우리들이 영적인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생각해보니, 제게 아주 평범한 일인데, 제가 교인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를 참 많이 해왔습니다. 그런데 제 자식이 이단에 빠지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긴장을 하시고 목사님 자식이 이단에 갔나? 목사님 요즈음 자식들이 신천지에 빠져가지고 고통을 당하시나? 이렇게 상상의 날개를 펴지는 마십시오.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잘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고 하니 저는 너무 당연시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저의 조모님이 권사님이셨고 아버님이 목사님이셨고 저의 육남매 24명입니다. 한 집에 4명씩 24명인데 이 24명에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이단에 빠진다는 것은 더더욱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제가 기도할 때에 헌금 많이 내는 좋은 장로 나오게 해주시고 우리에 대를 이어서 아들이 목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기도는 했지 제 자식이 교회를 잘 다니게 해달라는 기도는 당연하기 때문에 안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가 사춘기가 될 때에 예수 잘 믿도록 애들이 잘커줘야 되겠구나하는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번 이단에 관한 메시지를 지금 3월 한 달 동안 수요예배 때 전하다가 문득 내 자식이 지금은 건강하지만 혹시 얘들에게도 이단이 다가오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니까 갑자기 제가 경각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제가 구체적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어제도 제 딸아이와 점심을 먹으면서 이단에 빠지면 안된다 하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하게 되었어요.
여러분도 저와 동감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자식들이 가끔 낙심이 되어서 교회를 다닐까 말까하는 고민이 되고 또 상동교회를 다닐까 말까하는 고민이 되지만 우리 자식들이 이단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안하실 거예요. 여러분 기도하실 때 구체적으로 자식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우리 손자가 신천지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여호와의 증인에 빠지지 않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저는 솔직히 없어요. 저는 교회 다니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을 했고 그 바탕위에서 좋은 목사가 되고 또 딸이 있으니까 좋은 사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기도를 해오다가 아이들이 예수 잘 믿고 십일조 생활 온전히 하고 그런 기도를 드렸어요. 어제도 제 아이에게 꼭 십일조를 교회에 내고 십일조를 부모에게 드리고 십일조를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해서 십분의 칠로 사는 법을 네가 첫 번 사회 출발 때부터 배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몸에 배었으면 좋겠다. 저의 이야기는 언제나 예수는 잘 믿는데 그 다음에 더 충성스런 사역자가 되라고 하는 메시지였지 예수를 안믿을 거라고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이단에 빠진다는 생각은 더더욱 안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왜 경각심을 갖게 되었느냐? 신천지에 빠진 사람이 10만 여명이 되었어요. 우리가 가서 빼내온 시디의 숫자 속에도 5만 여명이. 그 뒤로 불어난 숫자까지 10만 여명이 들어 있는데 이 10만 여명이 단순히 옛날 통일교나 전도관처럼 자기 교회로만 위장한 것이 아니라 온갖 집단들을 다 만들어 놓았어요. 제가 한 번 읽어보면 여러분들이 혹시 들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들어보세요. 이것이 신천지 같이 보입니까? 사단법인 만남, 사단범인 하늘 무용단, 월지키미,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 봉달이, 온고을 크림, 헌혈행사, 태극기 손도장 찍기, 불우이웃돕기, 북한 어린이 돕기, 김장 담가주기, 쌀모으기, 페오수거, 우유팩수거, 설문조사, 그 다음에 위장한 단체가 생활문화연구원, 사랑이 머무는 곳에, 지식마당, 건강마당, 솜씨마당, 아침세미나, 그 다음에 미술심리치료, 도형분석, 치료상담강좌, 그 다음에 인터넷이나 대학이 들어있는 동아리 헌혈 동아리, RCY, 학술, 취업, 자기계발동아리, 도움닫기, 기독교 동아리 - 충남대의 가스펠, 그 다음에 맛동산, 맛집동아리, 팝동아리, 봉사활동 동아리, 전주대의 만남, 봉사활동 동아리 ES, 전북대의 글로벌 챌린지, 이름도 아주 생소하지요. 이게 다 신천지 동아리에요. 우리가 신천지라고 다가오면 금방 대책이 되는데 이런 대학가의 동아리, 인터넷의 동호회 사이트, 그리고 사회의 봉사단체 이런 것으로 접근해 오니까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10만 여명의 사람들이 넘어갔는데 넘어가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에요. 예수님의 예언이 먼저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2 사도의 권면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이단을 한 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디도 사이는 사제지간입니다. 그리고 사제지간은요 여러분들 중에 교육자들이 많으시니 이해가 쉬우실겁니다. 사제지간이란 스승이 제자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경륜을 내려보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지식이 전해져 내려갈 때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누가 더 지식이 출중하냐?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내려갈수록 더 발달이 되어서 출중해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스승을 능가하지 못하는 제자는 스승이 더 나을 수가 있겠지만 지식은 제자가 더 출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경험입니다. 경험은 세월이 있어야 쌓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이단을 멀리하라고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은 경험의 소산입니다.
이단을 말할 때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교와 이설과 이단의 구분입니다. 이교(異敎)는 교가 다른 거예요. ‘다를 이(異)’자입니다. 불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이교의 관계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입니다. 이설(異說)은 장로교와 감리교의 차이입니다. 설이 다른 것입니다. 이단(異端)은 짝퉁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진품을 모조한 짝퉁이 아니고 진품을 몰아내는 짝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교는 몸통 자체가 다릅니다. 이설은 몸통은 같은데 세부적인 데가 조금 차이가 납니다. 그렇지만 같은 정통교회로 고백하는 형제교회입니다. 이단은 ‘끝 단’자를 써서 말 그대로 끝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이단이라고 하는 희랍어가 가지고 있는 뜻을 보면 ‘선택한다’고 하는 말 ‘하이레오’와 ‘에레토스’라고 하는 ‘다른’이라고 하는 단어가 합쳐진 것입니다. 이 뜻은 다른 것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다른 것이 한자로 변역하다보니까 처음에는 같이 가다가 끝에는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이라고 하는 표현을 썼지만 내막을 보면 심장이 다른 것입니다. 사도의 권면 속에는 바울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저는 신천지에 빠져든 사람을 직접 권면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정말 믿었던 사람이지만 안돌아옵니다. 교인들이 목사와 가깝다고 해도 차라리 우리처럼 유관기관인 학교일로, 회사 일로 견해가 다르거나 감정이 상한 것은 좀 견해를 좁히거나 어떨 때는 좀 세월이 흐르면 그때를 회상하며 웃고 지나갈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단에 소속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심장이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장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저들의 심장은 적그리스도입니다. 다른 것이 조금 다르면 떼어 버리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장이 다르기 때문에 심장이 멈추면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닙니다. 이 사도의 권면 속에 이교와 같이 종교가 다른 이설과 같이 견해가 다른 이런 것이 아니고 아예 심장이 다른 이 짝퉁인 이단은 멀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와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이교가 어디입니까? 유대교와 이방인들의 종교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인도 헬레니즘 문명 속에 들어 있는 동방의 시리아, 터키 쪽에 있는 사람들도 개종을 시켰습니다. 로마에 들어가서 황제 숭배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황제교 신자들도 개종을 시켰습니다. 바울의 목회 경험과 전도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교신자들은 개종을 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의 견해와 다른 이설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루살렘교회 지도자였던 베드로와 야고보를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적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첨예하게 대립된 상징적 사건이 무엇입니까? 할례문제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할례를 받아야 세례를 주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할례를 받지 않아도 세례를 주었습니다. 얼마나 달랐는지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다툼과 변론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유대인의 사도로, 우리는 이방인의 사도로 그리고 저들도 우리와 똑같이 동일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하는 사도총회의 선언문을 가지고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제의 약속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경험적으로 이교신자는 개종을 시켰고 이설은 대화를 통해서 변론을 통해서 하나의 동일한 선언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바울은 세례의 조건에 대해서 상이했지만 함께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역자라고 하는 점에서는 손을 잡았습니다.
침례교 신자들은 물속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밥티조’가 아닙니다. 희랍어의 세례라는 ‘밥티조’는 물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머리에 물 뿌리는 것은 이것은 말도 안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중세교회 위에 했던 이마에 다가 스프레이처럼 물을 뿌리는 이 관수제도의 세례제도는 더 한심한 것입니다. 그래도 침례교 신자가 감리교 신자를 이단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설이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성경을 읽는 중에 바울이 이단을 회개시켜서 돌아오게 했다는 이야기는 보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이교신자도 개종을 시켰습니다. 이설신자들하고도 합의문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이단은 바울도 감당이 안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경험적으로 디도에게 이단을 멀리하라고 말합니다. 이미 심장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죽이려하는 적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이단이 되어버리면 그때는 대화가 안됩니다. 우리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 사랑할 뿐이고 기도할 뿐입니다. 여러분 일본 대지진의 원전 사고가 났는데 뭐가 문제였습니까? 방사능 때문에 거기를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사대가 생명을 걸고 들어갔습니다.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을 우리가 불쌍히 여깁니다. 그런데 이단에 빠져 있는 사람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가지고 있는 적그리스도 바이러스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훈계한다고 갔다가 통일교에 처음 권면하러 갔다가 넘어간 이대 교수들처럼 우리가 그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 자신들이 영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 둘씩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10만 명 가까이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1000만 이라는데 1%가 되는 10만 명 그 정도야. 그리고 나는 그 속에 들어가 있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지만. 10만 명이라는 숫자는 물론 그 속에는 허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국을 곳곳마다 다 커버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한국교회를 5만 개로 보면 한 교회를 2명씩 배치할 수 있는 숫자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숫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위기를 넘어 설 수 있도록 예방해야 합니다.
3 교회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예언과 사도의 권면 속에 들어있는 이단을 멀리하는 이 말씀을 알면 교회의 대책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대책을 세워야 되겠습니까? 예방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최고입니다. 교회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까 제가 말씀을 드릴 때에 여러분 자식을 위해서 정말 내 자식이 교회 잘 다니고 예수 잘 믿고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신 적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관심이 정말 다른 데에 가 있습니다. 정말 우리의 자식들이 예수 잘 믿고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되는데 솔직히 저 자신도 너무 교회 다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내 자녀들이 당연히 교회에 다닐 것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내 자녀가 이단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하면 구체적으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장로교 합동측은 이단에 대처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하라고 하는 지침을 내걸었습니다. 첫째는 교회 밖에서 성경공부 하는 것을 금하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천지에 있는 10만 명이 전부 교회 밖에서 성경공부 하다가 넘어갔습니다. 신천지가 신천지라는 이름을 가리고 기성교회에 침투할 때 내걸었던 첫 번째 간판은 무료성경신학원입니다. 공짜로 성경을 가르쳐준다고 하니까 넘어갔습니다. 거기서 비유론을 가지고 성경을 비유로 풀어야 된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비유로 푸는데 이것이 영지주의적인 알레고리칼 해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성서해석상 문제가 되는 해석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신천지는 교회 안에 탐색조를 보내어 교회를 탐색 해보고 교회에 추수꾼을 보내서 신천지 갈 사람을 뽑아내서 바깥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그다음에 그렇게 성경을 가르친 다음에 산을 옮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통째로 신천지로 끌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과 방법을 모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략을 쓰는데 교회가 속수무책입니다. 그 모략을 꾸미는 아주 전망의 단계가 뭐냐하면 ‘성경 아십니까’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황스러운 성경을 질문합니다. 그 후 성경을 가르쳐준다고 데려가서 성경공부를 해보니까 기존교회에서 듣지 못하던 이야기여서 빠져든 사람이 하나 둘 가다가 10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교회 바깥에서 하는 모든 모임은 다 불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교 합동측은 교회 밖에서 성경공부를 하거나 제자훈련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담임목사에게 허락을 받고 하라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담임목사가 지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이 파괴될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천지 집단은 주로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이나 목회자의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공략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탐색조가 들어와보니까 교회 안에 교회에 대한 불만이 있거나 목사의 설교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접촉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천지 집단은 교회에 대해 불평을 하는 사람, 특히 교역자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을 포섭대상으로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신천지 집단은 교회에 등록할 때나 전도할 때도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고 등록하고 전도합니다. 그래서 이 방법을 모략이라고 합리화시킵니다.
그리고 신천지 집단은 교주 이만희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세뇌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사회 속에서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위장단체에 가입하게 하고 그리고 위장교회와 기도원을 세워서 미혹하게 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인터넷에 들어가보시면 신천지를 치면 신천지를 반대하는 웹사이트가 쫙 나오는데 들어가서 점점더 들어가다보면 나중에 신천지가 쳐놓은 그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설문지를 가지고 성도들에게 미혹합니다. 집을 방문하거나 또는 공원에 있거나 또는 기독교 영화제나 도형그리기 같은데서 미술치료를 한다, 상담치료를 한다, 애니어그램을 본다, 또는 손끔을 본다, 그렇게 접촉을 해서 결국은 성경공부 하러 가자 하고 가면 안돌아 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위장 언론이 있습니다. 기독교초교파신문 - 천지일보로 바꿨어요. 인터넷에 있는 올드앤뉴스 - 뉴스천지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에 있는 위장단체를 통해서 교회 안에 들어와서 탐색하고 추수조가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자기 신천지로 데려가고 그 사람들의 수가 많아지면 교회를 정복해서, 산옮기기 작전이라고 해요. 아예 교회를 협박을 하는 거지요. 목사의 약점을 잡아내가지고 너 목회하려면 우리를 지지해라. 안하면 너 다 까발리겠다. 그러면 목사들이 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넘어간 교회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여기 신천지를 연구한 합동측에서 뭐라고 썼는가 하니 위장교회와 기도원인데 대한예수교장로회 복된교회, 사랑교회, 생명삶교회 같은 것으로 위장교회를 세웠다는 것이지요.
감리교회가 좋은 것은 감리교회는 위장교회가 없어요. 왜냐하면 감리교회는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사람을 감리교인이라고 말하면 계통을 따라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감리교 간판은 유사 이래로 이단들이 달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점이 좋아요. 그리고 감리교회는 여러분이 구역회할 때 좀 짜증은 나셨지만 그래도 좋은 점이 있어요. 감리교회는 일단 감리교회 유지재단에 재산에 등록되면 목사와 교인들이 표결을 해도 넘어가지 못해요. 옛날에는 대법원에 가서 표결로 처리하면 재산을 반분할 할 수 있는데 이제는 그것 마져도 못하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감리교 간판을 달수가 없어요. 재산을 가져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일 많이 다는 것이 대한예수교장로회에요. 왜냐하면 교파가 300여개 되다보니까 그 중에서 좋은 장로교회가 많은데 서로 통제가 안되요. 확인도 안되고. 그리고 교회가, 목사님이 우리는 이번에 통합측 교회가 싫어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측 그리고 방배동 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교인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가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까 협박을 받아서 목사님이 신천지에 투항을 하는 거예요. 감리교회가 좋은 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감리교회는 목사나 장로님들이 임의적으로 교회를 가져갈 수가 없어요. 싫으면 자기가 가야 되. 목사도 교회가 싫으면 자기가 떠나는 거고. 장로님도 싫으면 자기가 떠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뜻이 아니고 뭐냐하면 재산문제 관해서 그렇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것은 감리교의 본부가 전국의 재산을 장악하고 있어요. 신천지가 위장한 감리교회는 아직까지 한 개도 없습니다. 그것이 제도적으로 못하게 되어 있어요.
4 신앙의 원칙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신양의 원칙이 무엇입니까? 발란스입니다. 왜냐하면 이단이 나오는 것은 두 개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머리를 통해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가슴을 통해서 나옵니다. 머리를 통해서 나오는 이단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나오는 지식적인 이단입니다. 장로교 합동측의 내용을 보면 “신천지는 영지주의적인 이단이다.”라고 규정 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지식을 통해서 머리로부터 나오는 이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이단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주의로 가는 이단입니다. 신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존교회는 밋밋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디 가서 뜨겁게 기도하다가 내가 하나님 만났다 신 받았다. 그래서 샤머니즘적으로 극단적인 황홀경의 상태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머리로부터 나오는 지식적인 이단과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감정적인 이단이 있는데 이 머리로부터 가는 것이 신천지 유형적으로 성경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들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머리도 있고 가슴도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발란스가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감리교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 목사는 위대한 종교개혁가입니다. 루터의 개혁도, 칼빈의 개혁도 훌륭하지만 웨슬리의 부흥운동의 개혁이 더 위대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발란스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조성남 박사님의 웨슬리신학의 결론이 뭐냐하면 중용과 통합의 신학입니다. 거기서 4중 표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통과 성경과 이성과 체험입니다.
전통을 인정할 때 교회는 이단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전통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전통만 이야기 하니까 너무 구태의연하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교회는 전통이 중요한 것입니다. 전통이 있을 때에 거대한 항공모함처럼 잔 실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경직화되어집니다. 그러면 거목이 되어야 하는데 고목이 되니까 이 고목화 되어지는 교회를 거목으로 만들려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종교개혁의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정신이 일어나야 됩니다. 이것이 뭐냐하면 성경입니다.
그래서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으로서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강조하다보니까 신천지 같은 것이 나옵니다. 그래 성경이 중요하지 성경 해석할 줄 아냐고 하며 비유론을 가지고 모략을 가지고 추수꾼이 탐색을 하러 들어오니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강조하되 성경은 인간의 이성이라는 합리성 가지고 해석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설까지는 인정하지만 이단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발란스를 맞춰야 되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을 고려하지 아니하는 성경 해석은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억지지로 짜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학자들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일선의 목회자들은 현장에서 손에 흙을 묻히는 농부와 같이 교인들과 같이 씨름한다고 하면 언제나 신학자들이 좋은 말씀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또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어떻게 되냐 하면 자신의 이성을 논리를 벗어난 신앙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체가 신비입니다. 예수의 부활도 신비입니다. 인간의 이성 속에는 해결이 안습니다. 이 초월적인 하나님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체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전통에서 출발해서 성경을 거치고 이성을 거쳐서 체험에 이르러 완성이 되어야 됩니다. 이 발란스가 깨져버리면 여러분의 몸의 발란스가 깨지면 병이 생기듯이 이 네 가지가 밸런스가 이루지 아니하고 한 쪽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 감정이 강조되면 이것은 신비주의로, 이성이 강조되면 차가운 지식주의로 성경만 강조되면 신천지처럼 억지 해석으로, 전통만 강조되면 교회가 고목화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이 4중 표준을 가지고 건강한 신앙을 우리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저는 이제 말씀을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예언 속에 이단의 등장이 이미 예고가 되었고 사도의 권면 속에 이미 목회 경험을 통해서 이단은 멀리해야 상책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교회 밖에서 하는 성경공부를 금하는 것이고, 목회자의 그런 섬김을 통해서 돌봄을 통해서 언제나 여러분의 신앙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우리 감리교회의 발란스 갖춰져 있는 4중 표준을 따라 전통과 성경과 이성과 체험을 잘 균형 잡아서 우리의 신앙이 건강한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이 이단에 빠지지 아니하고 상동교회와 더불어 건강한 신앙을 지켜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