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우신 하나님(2010-0912 설교) 전문
2010년 9월 12일 서철 담임목사 설교
은혜로우신 하나님
:: 요엘 2:12-14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할렐루야!
오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설교전에 몇 군데 말씀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시편 86편 15절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요나서 4장 2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느헤미야 9장 17절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지금 읽어드린 성경구절들의 내용이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롭다고 하는 이 선포들은 출애굽을 했던 그 당시부터 다윗 왕정시대의 찬양대의 찬양을 통해서 그리고 느헤미야시대의 역사를 거쳐서 선지자들의 선포를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이 표현은“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라고 할 때에 자신의 메시지를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이런 요나를 우여 곡절 끝에 하나님께서 다시 니느웨로 인도하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요나는 마지못해 말씀을 전했는데 그들이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며 요나는 놀랍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분임을 만나게 됩니다.
인간의 죄책감
존 웨슬리 목사는 1725년에 장로목사의 안수를 받으면서 홀리클럽이라는 신성구락부를 발전시킵니다. 13년이 지나 회심하고 그의 일기 속에 로마서 8장 1절과 2절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내가 한 법을 깨달았는데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있던 나를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하는 것을 깨달았다.”죄와 사망의 법이 웨슬리 목사를 13년 동안 얽매고 있었습니다. 이 죄와 사망의 법은 종교학자들에 의해서 종교적 열등감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죄책감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죄책감이 다 있어서 자신이 불행하고 어려운 일을 경험하면 생각하기를 “죄 값이구나, 내가 벌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북 아메리카의 선교사로 가서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오면서 절규합니다. “나 때문에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구원을 받았는데 나는 누가 구원을 줄 것인가?”이런 생각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종교적 인간으로는 성공했지만 복음적 인간으로는 실패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을 통해서 회심을 경험하고 예수만이 나의 주님이심을 경험하고 자신의 마음을 묶고 있었던 죄와 사망의 법의 고리를 끓어 버립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시켰습니다.” 그 때부터 웨슬리의 설교는 달라집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를 하나 소개시켜주겠습니다. 싸우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곳은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곳입니다. 우리의 삶의 절망이 엄습해 올 때도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스스로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조차도 예배하며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감리교회입니다.
광부들을 비롯한 술에 취한 깡패와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웨슬리의 설교를 듣고 교회를 찾아옵니다. 자신이 술에 취해서 깡패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제 스스로 생각해도 인생이 끝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막장의 인생이라고 하는 광부들이 자신의 인생은 밑바닥까지 내려와서 스스로가 사람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는데, 이 감리교회에서 예배하니까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자기가 사람일뿐 아니라 아직도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웨슬리는 칼빈주의자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이 전하는 하나님은 위협과 공포와 무서운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나를 품어주시고 나를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며 탕자가 돌아올 때까지 가락지와 신을 준비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이 사랑의 하나님을 여러분에게 설교 한다”고 말했습니다.
In Nobis 내 안에 있는 하나님
웨슬리 목사님은 Extra Nobis 즉, 나 밖에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In Nobis 나 안에 있는 하나님을 그리워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신학적 진술이 지적으로는 동의가 되는데 마음속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종교적인 열등감인 죄책감이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나 밖에 있는 Extra Nobis의 하나님이 아닌 In Nobis 나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나의 지성으로 인지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가슴속에서 체험되어 지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성령의 체험을 통해서 만납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 전에 나오실 때에 어떤 마음을 가지고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이 기대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여러분을 만나고 여러분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은혜로운 하나님이심을 꼭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헌금을 온전히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다 망가뜨리고 가게는 부도가 나고 사업은 망할 것 같은 위협을 느낍니까? 주일을 지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갈 때에 우리의 자동차가 펑크가 나고 사고가 날것이라는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웨슬리가 말한 것처럼 오늘 하나님을 만나러 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협박하고 위협해서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일을 지키지 아니하면 액운이 끼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리워서 찾아오고 내가 그토록 죄를 짓지만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기다려 주시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렘브란트의 귀향이고, 헨리 나우웬의 영성입니다.
요엘과 야고보가 전한 은혜의 하나님
요엘서의 말씀은 메뚜기와 팥중이와 느치과 황충 때문에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놓여있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사를 망쳤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죄 값을 받는구나, 우리가 벌 받는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해치고 있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엘이 외칩니다. 여러분에게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절망하면 안 됩니다. 죄책감에 시달리면 안 됩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우리의 삶이 사망의 율법에 묶여있으면 안됩니다. 요엘 선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자비하시고 인애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이렇게 전합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엄청난 희망으로 와 닿았습니다.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목회자입니다. 목회를 해보니까 신학적 진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상황에 부닥치는 인간의 마음이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병이 들어서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죄책감 때문에 기도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가 말합니다.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5:15절』 왜? 야고보가 혹시 죄를 범했을 지라도 사하심을 얻는다고 말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만나주시길 원하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준비가 되어있고, 뜻을 돌이키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기도의 문이 막혀있고 하나님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다가서지 않습니다. 도둑이 제 발을 저는 것 것처럼 스스로 하나님을 기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치 탕자처럼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지만 그냥 방관하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서 외치게 하십니다. “나는 은혜로운 자다. 나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다. 나는 자비로운 자다. 나는 뜻을 돌이킬 수 있다. 나는 재앙을 내리기보다 뜻을 돌이켜 복을 끼치기를 원하고 너희의 소제와 번제를 받아줄 것이다.”
신앙인이 버려야할 두 가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에 버려야할 양 극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만입니다. 야고보서 4: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으니 교만은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온유하고 겸손하지만 우리는 죄책감에 시달려서는 안 됩니다. 교만도 버려야 하지만 죄책감도 버려야 합니다.
은혜로우신 이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삶을 다 고백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복을 끼치시고 우리의 소제와 전제를 받아주신다는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요나는 마지막에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니느웨 사람들은 복음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요나는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신 분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만나야 될 “은혜”의 하나님
웨슬리는 목사안수를 받고 13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죄책감을 해결했습니다. 야고보는 목회를 하는 중에 성도의 가장 큰 문제가 죄책감 때문에 기도하지 못함을 알았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서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오늘 우리 자신이 교회에서 예배하며 만나야 될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하나님을 만나시길 축원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을 만나서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정말 기도해보셨습니까? 정말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이것은 신학적 진술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여러분이 해야 될 정언명령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의 설교는 여러분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느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메뚜기와 팥중이와 느치와 황충이 몰려와서 우리의 농작물을 다 갉아 먹었습니다. 이제 우리 먹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슴을 송두리째 공포심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절대로 여기서 절망하시면 안 됩니다. 낙심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자비롭고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키시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하나님이 소제와 전제를 받으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아주시고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복을 끼치실 것입니다. 오늘 이 메시지가 그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로 선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전에 나오실 때 절망과 낙심과 불안과 공포 속에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만나셔서 웨슬리가 경험했던 해방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을 묶고 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여러분을 해방케 하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웨슬리는 자신의 이것을 일기에 기록하고 나서 다시 로마서 8장 16절과 17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웨슬리 목사는 깨닫습니다. 자신의 밖에 있는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안에 들어오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영과 더불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느끼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6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은혜로운 하나님을 선포하시는 분은 하나님자신입니다. 이 은혜로운 하나님을 역사 속에서 성벽을 재건하며 다시 외친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그리고 은혜로운 하나님을 찬양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이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농사가 다 망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실망한 백성들에게 희망으로 선포한 자가 요엘입니다. 요나는 이 은혜로운 하나님을 깨닫기 못한 채 선지자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시각으로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를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버린 사람조차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붙들어주셔서 그들을 향해서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그를 향해서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그들을 향한 뜻을 돌이키시고 복을 끼치시는 분임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이 요나입니다.
오늘 이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셔서 한 주간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