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神學)/종교철학

[스크랩] F.D.E. Schleiermacher 의 종교론

우순(愚巡) 2006. 4. 22. 18:08

.. F.D.E. Schleiermacher 의 종교론


지도교수: 방성규박사 발제:서철(Ph.d 2/6) 발제일: 2002.11.5
출전: F.D.E. Schleiermacher,ꡔ종교론ꡕ,최신한 옮김(서울:대한기독교서회,2002)


1.종교론의 태동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은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태동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가 천박한 계몽주의라고 비판하듯이 이성위주의 관념적 사유에서 종교를 멸시하거나 비판하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전하려고 종교론을 썼다. 그러나 그도 그 당시의 계몽주의적 영향 때문에 종교론을 익명으로 출판하고 그 반응을 예의 주시하였다.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은 훗날 낭만주의의 문을 열었다 종교론의 첫 장이 종교변증론인데 특별히 교양인들에게 종교를 변증하고 있다. 슐라이이르마허의 변증 대상이었던 교양인들 그들은 계몽주의적 사유에 젖어 종교를 비이성적인 비진리로 도외시하는 천박한 계몽주의자들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 종교론은 정통신학의 교의적인 강단체계에 대한 반동으로도 태동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조직화된 가시적 교회의 교리체계나 교의학적인 체계를 거부하고 종교의 보편적 본질을 물음으로써 새로운 학문을 시도하였다. 이는 성서해석학에도 영향을 미쳐 특수해석학이 아닌 보편해석학의 길을 열어 놓게 된다. 슐라이이르마허에게 종교의 본질을 논하면서 교의적이거나 교리적이거나 조직체계적인 가시적 종교의 체계는 극복해야될 대상이었다. 이러한 종교론의 지향성은 필연적으로 보다 본질적인 종교성을 묻게 되었고 타종교에 대한 긍정성을 남겨 두게 됨으로 종교 일반의 감정을 모두 다 시인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때문에 슐라이이르마허은 자연신론자 또는 범신론자라고 공격을 받기도 한다. 여하튼 슐라이이르마허에게 종교의 본질은 굳어진 교의체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는 직관과 감정의 만남이다

2.종교론의 핵심

이런 점에서 종교론의 핵심은 종교의 본질을 역사적인 종교나 교의체계에서 찾지 않고 인간의 마음에서 찾는다. 이 점에서 기존의 교의 체계와 조직체계에 머물렀던 종교이해의 폭을 넓혀 놓았다. 그러나 교의나 조직 체계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모든 것을 개념화하려는 이성의 합리론적 추구에도 반발하였다. 슐라이이르마허는 신의 자리에서 인간을 바라보지 않고 인간편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근대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성만을 사유의 도구로 삼지 않고 오히려 감성을 사유의 도구로 삼았다는 점에서 계몽주의와도 구별된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이성보다 직관과 감정을 사유의 도구로 삼았다. 이 직관과 감정이 슐라이에르 마허의 사상을 해독할 수 있는 키워드다. 직관과 감정이 찾는 것은 무엇인가? 슐라이이르마허는 단순히 교의학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즉 직관과 감정이 찾는 대상은 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무한자’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무한자를 체험하는 인간의 직관과 감정이 종교의 본질이며, 인간은 종교적 체험을 통하여 무한자를 경험함으로 자기를 바로 인식하게 된다. 이 때 무한자를 체험하게 되는 인간은 자신의 제약성과 우연성을 의식하게 되며 겸손하게 자기를 인식한다.

이런 유한자와 무한자의 만남이 슐라이이르마허의 종교론을 규정하는 핵심사상이다. 여기서 계몽주의 시대를 넘어서는 낭만주의의 일면을 본다. 유한자와 무한자의 만남! 대립이 아닌 통합으로의 만남! 그리고 유한자는 무한자의 전체 부분으로 무한자는 유한자의 삶에 내재하는 만남의 중심점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종교적 경험이란 바로 이 무한자와 유한자와의 만남이다 이 때 유한자가 무한자를 경험하지만 그 만남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무한자가 유한자에게로 다가오는 은총의 돌입이 있다. 그런 무한자의 의지와 노력은 필연적으로 유한자인 인간에게 ‘종교적 선험성’(Das Religiöse Aprioi)을 주었다.


3.종교론의 신존재 증명

종교적 선험성이란 신존재 증명을 대신하기도 한다. 무한자는 개념을 통해 체계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직관과 감정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존재이다. 이러한 종교적 선험성은 사유나 의지와는 다르게 수동적이다. 직관하는 자에게 직관되는 무한자는 직관하는 자의 자발적인 활동성에 의해 직관되는 것이 아니라 직관되는 무한자의 행위에 의해 직관하는 자에게 드러낸다. 따라서 슐라이이르마허에게는 무한자를 진정으로 직관하는 종교의 거장(Virtuose)과 실정적인 역사가 늘 중요하다.

이런 논리적 전개는 필연적으로 신을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으로 국한되지 않고 무한자라는 보다 광범위한 지평으로 확대시킨다. 그래서 슐라이이르마허에게 무한자는 일자이기도 하며 전체이기도 하며 무한한 세계이기도 하다. 또 무한자는 헤겔의 절대정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슐라이이르마허에게는 신이 어떤 존재이냐는 물음이나 인간의 영혼이 불멸하는냐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무한자를 경험하는 인간의 직관과 감정이 어떻게 신을 접촉하느냐는 것이 보다 더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신이란 이성의 사유를 통하여 개념적으로 정립되는 무한자가 아니라 직관과 감정을 통하여 만나지는 무한자이다. 그러기에 신이라는 개념에 매달려 있으면 오히려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신의 존재는 인간의 직관과 감정을 통하여 만나지는 존재이므로 접촉할 때 느껴지는 느낌을 통하여 파악될 수 있다.

따라서 슐라이이르마허에게 신이란 무한자이며 개념속에 갇혀 있는 관념론적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개념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 곧 근거를 밝힐 수 없는 심연과 같은 존재이다. 오직 그는 개념화해서 말함으로 인식되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심연이 개별화된 인간의 종교적 선험성을 도구로 하여 엄습해 올 때 비로소 접촉함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이 부분에서 슐라이이르마허는 독일의 관념론과 길을 달리 하면서 갈라진다. 여기서 무한자인 신은 직관과 감정을 통하여 유한자를 자극하고 일깨우며 인간의 심성가운데서 자신을 각인시킨다. 무한자는 그를 향하는 인간의 자발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간에게 직관되는 그의 적극적인 작용을 통해서만 접촉될 수 있다.

이런 직관과 감정을 통하여 무한자를 접촉하는 데는 자연과 인간성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슐라이이르마허에게 자연은 원자의 총합이 아니라 존재의 역동적인 연결이다. 그는 셸링과 헤겔의 자연철학적 요소를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괴테와 헤르더의 시적 물할론적 자연해석과도 유사하며, 티익과 노발리스의 동화적이며 신비적인 자연관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개별적인 개념이나 근원적인 배후의 존재성이 중요하지 않고 전체와 연결되어 있는 역동적인 체계가 중요하다. 이것은 一者속에 全體가 있고 전체 속에 일자가 있는 무한자와 유한자의 연합과도 일맥상통한다

슐에게 인간성은 종교와 깊은 관련을 맺는다. 인간성은 다른 존재와는 구별되는 존엄성을 가지고 있으며 헤겔의 절대정신과 같은 세계정신으로 표현되는 무한자는 인간성을 매개로 해서 획득되어진다. 이 점 때문에 슐라이이르마허의 종교론은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고 실재철학적인 요소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슐의 종교론은 필연적으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무한자를 경험하는 인간의 초월적 가능성과 개방성을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색채이며, 다른 하나는 무한자를 경험하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교학적인 개방성이다.

인간 경험의 개방성과 종교의 개방성! 이 두 가지 개방성이 낭만주의적인 사조와 함께 새로운 인간중심의 종교관을 열게 되었다. 인간의 개방성은 무한자를 경험하는 인간을 강조함으로 신은 인간안에서만 말하게 됨으로 더 이상 인간 밖의 절대 타자로써 독긻적인 위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직관과 감정속에 존재함으로 종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은 종교가 아닌 인간의 직관과 감정을 중시하는 또 하나의 인본주의적인 인간이해를 낳았다

종교의 개방성이란 모든 종교가 있는 종교의 본질을 긍정하는 데서 필연적으로 야기된 문제이다. 기껏해야 유대교와 기독교의 문화 밖에는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슐라이에르마허에게는 종교의 개방성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플라톤의 초 세계적 이데아 또는 칸트의 형이상학 등만 생각했지 동양의 다양한 종교를 염두에 두지 못한 것 같다. 슐라에르마허가 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던 종교경험의 가치는 필연적으로 종교의 가치를 일직선상에서 동등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느 쪽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4.종교론의 영향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론은 감성주의 해석학을 통하여 인간의 직관과 감정이 가져오는 무한자의 경험을 긍정함으로 모든 종교의 본질에 내재되어 있는 경험의 동등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기독교의 배타성이 사라지고 종교 일반의 경험성이 강조되므로 자연히 범신론적이거나 아니면 종교다원주의로 가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성중심의 사유를 넘어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해석학을 제시하였지만 신이 더 이상 신의 자리에 머물거나 신의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감성속에 머물게 됨으로 신을 자칫 가공의 존재로 전락시킬 위험을 내포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실제로 이후에 등장하는 신학과 철학은 종교를 인간의 심리학적 투사체로 이해하거나 인간의 산물로 이해함으로 신은 인간을 창조한 창조자로 존재하지 않고 인간에 의하여 창조되어진 피조물로 존재하는 양상을 띄게 되었다.

더구나 신은 더 이상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주관적인 경험의 산물이 됨으로 이성중심의 인간 중심적인 신 이해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보다 더 인간중심의 신 이해로 전락하여 마침내는 신 존재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반작용을 낳게 되었다. 종교를 긍정함으로 아직도 신의 존재를 무한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했던 슐라이에르마허의 시도는 본인이 시도하지 않았던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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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생기바다
글쓴이 : 서 철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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