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아브람의 신앙 (창세기 12장 1절-6절)Hartford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송성모 목사 시무)
성경본문: 창세기 12장 1절-6절, 설교제목: 아브람의 신앙, 설교일 : 2005년 5월 29일 주일 예배 설교 공동체: 하트포트 한인교회(Hartford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송성모 목사 시무)
*성경본문: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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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좋은 아침입니다. 거룩한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가 하트포트 한인교회에 오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는 몇 분들이 알고 계신 것처럼 한국의 인천 복지교회를 섬기고 있는 서철 목사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창세기 12장 1절로 6절의 말씀을 가지고 "아브람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을 강론하려고 합니다. 미국 문화도 모르고 영어도 서툴러서 좋은 설교을 할 수 없지만 우리 주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셔서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하시는 은혜로 우리를 복되게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람에게서 많은 믿음의 교훈을 얻습니다. 오늘 아침 저는 아브람의 신앙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강론하려고 합니다. 믿음의 모델과 말씀의 순종과 비전의 성취입니다. 아브람은 믿음의 모델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말씀의 순종을 통하여 믿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순종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했습니다. 오늘 이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깊은 위로와 평강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케 하실 줄로 믿습니다.
1. 첫째로 아브람은 믿음의 모델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델은 많은 사람의 본보기입니다. 사람들은 모방을 통해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다고 합니다.그래서 좋은 모델을 선정해서 모방하면 인격도 성숙하고 스스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에게 위인전 등을 읽게 합니다. 좋은 모델은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합니다.
아브람은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믿음의 모델이었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델입니다.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들이 배워야 할 본보기입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평가할 때 모델로서의 가치는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의 가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의 모델성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들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게서 여러가지 삶의 틀거리를 봅니다. 아브람은 우리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아브람은 믿음이 모델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전합니다. 아브람은 믿음으로 의를 얻었습니다. 신앙의 본보기였던 사람들을 열거한 히브리서 11장 8절로 10절은 은 아브람을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 때 갈바를 알 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 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너로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순종하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순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창 15장 1절로 11절에 따르면 아브람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아멘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청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두운 밤하늘 밑으로 부르면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이 자손을 약속하시면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약속하시면 그 땅을 바라보고 일평생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번제를 바치라고 하면 번제를 바쳤습니다. 그냥 바친 것은 아니고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삼년 짜리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말씀하시는 대로 중간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고 솔개를 좇으며 번제를 드렸습니다. 타는 횃불이 지나갈 때 바라 보며 드렸습니다. 아브람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번제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타는 횃불로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7절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타는 횃불이 쪼갠 사이로 지난 것을 보도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언약의 예식이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8절은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언약을 맺으셨다고 전합니다. 이 언약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의 후손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 권념하시사 축복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로 25절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은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권념하셨습니다. 권념은 돌아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관심이 집중된다는 뜻입니다. 마치 어두워진 무대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 결과가 출애굽의 대서사시 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람이 맺은 언약과 모세의 출애굽 시대와는 약 620여년 정도의 시차가 있습니다. 아브람(175세, 창25:7), 이삭(180세,창35:28),야곱(147세, 창47:28), 요셉(110세, 창50:26)은 100세 대의 삶을 살았는데 아브람이 언약을 맺을 때는 약 75세 쯤으로 보이거나 아님 85세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창세기 16장에 따르면 사래가 아브람에게 하갈을 부인으로 준 때가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 후라고 되었기 때문에 창 15장에 나오는아브람의 언약기사는 75에서 85세 사이로 보입니다.
이 때 부터 모세의 출애굽 때를 연산하면 약 620여 년이 됩니다. 아브람이 100세 때 이삭을 낳았으니 아브람과 이삭이 함께 산 것이 75년이요,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한 것이 40세이고(창25:20), 야곱이 애굽에서 17년을 살다가 147세에 죽었으니(창47:28) 야곱의 나이 130세에 애굽에 내려간 것입니다. 이는 아브람이 언약을 맺은 시기를 75년에서 85년 사이로 보아 80세쯤으로 산정하면, 아브람의 나이 100세에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의 나이 40세 또는 41세 즉 아브람의 나이 140세에 야곱이 태어나 130세까지 가나안에 살았다는 애기입니다. 이것을 합치면 아브람의 언약 부터 이삭의 출생까지 20여년, 이삭의 출생부터 야곱의 출생까지 40여년, 야곱의 출생부터 애굽이주까지 130년, 도합 190여년이 됩니다. 정확하게는 185년에서 195년 사이입니다. 거기에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자손이 430년을 애굽에서 살았으니 아브람때부터 합치면 약 615년에서 625년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의 언약을 기억하시사 620 여년 후에 태어난 아브람의 후손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순종을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이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체면문화나 명예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브람처럼 믿음의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전당에 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혹 이민을 와서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트포트 교회의 식구들을 보니 대체적으로 한국의 일류대학을 나온 수재들이고 미국 사회에 정착을 하신 엘리트들이십니다. 이제 하나 묻겠습니다. 좋은 조건을 구비하신 여러분의 삶의 결과는 아브람처럼 믿음의 모델이 되셨습니까? 모든 것을 다 얻어도 믿음의 모델성을 구비하지 못하시면 영생의 시간에 견주어 볼 때 찰나에 불과한 이 짧은 인생의 덧 없음에 불과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얻으시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의 명예 전당에 이름이 오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아브람처럼 믿음의 모델로 내세울 하나님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2. 들째로 아브람은 말씀의 순종을 통하여 믿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말씀의 순종을 통하여 믿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입니다. 아ㅓ브람의 믿음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데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듣고 살았습니다. 창세기 12장 부터 시작되어 창 25장에 끝나는 아브람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르시되(11번)"와 "가라사대(19번)"가 서른 번이나 나옵니다. 비슷한 것을 따지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 말씀을 하셨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읍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믿음의 모델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가나안을 갈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갔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을 보면 아브람은 말씀을 좇아 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람과 같이 가나안으로 간 롯은 말씀을 좇아 간 것이 아니라 사람(아브람)을 좇아 갔습니다. 여기 서로 상반된 모델이 있습니다. 말씀을 좇아가는 모델이 있고 사람을 좇아 가는 모델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 부터 같이 출발 했고, 중간에 가나안에도 같이 들어 왔지만, 마지막에는 아주 다른 운명을 맞이합니다. 아브람은 약속의 땅의 주인이 되었지만 롯은 결국 가정을 잃어버리고 유황불로 심판 받은 저주의 땅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시작이 같아도 과정이 같아도 결과가 달랐습니다.
이 아이러니 이 역설적인 갈라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말씀의 있음과 없음입니다. 말씀이 있는 사람이나 말씀이 없는 사람이나 시작은 같아 보입니다. 어느 선까지는 과정도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게 됩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좇아 갔고 롯은 아브람을 좇아 갔습니다. 일견 롯도 성공한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요즘 시중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저서들은 한결 같이 인맥의 중요성을 이야기 합니다. 좋은 의미에서 사람을 잘 만나고 사람을 잘 사귀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믿음의 모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입니다.
롯은 믿음의 모델인 아브람을 따라 갔기 째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브람의 목자들과 자기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자 소알까지 물이 넉넉한 요단들을 택하여 떠납니다.(창13:10). 그 땅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의 땅 같았습니다.(창13:10). 롯은 그 땅에 장막을 쳐 소돔까지 이르렀는 데 평지였습니다.(창13:12). 하지만 그 땅에서 롯은 싯딤 지역의 전쟁에서 포로가 됩니다(창14:12). 후에 아브람이 마므레, 아넬, 에스골 형제와 동맹을 맺고 가신을 데리고 가서 롯을 구했으나(창 14:13-16), 결국은 솜돔과 고모라가 불바다가 됨으로 정착지를 잃어버리고 유리하는 자가 되었으며(창19장), 뒤를 돌아다 본 아내를 잃었습니다(창19:26). 또 딸들이 먹인 술에 취해 딸들이 들어 오는 것도 모른 채 동침하여 큰 딸은 모압 족속의 조상인 모압을 낳고 둘째 딸은 암몬 족속의 조상인 벤암미를 낳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창 19:30-38) 그것으로 롯의 이야기는 끝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의 운명은 실패의 모델이 되고 아픔의 모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가는 사람과 사람을 좇아 가는 사람의 마지막은 다릅니다. 처음은 비슷해 보이고 중간은 축복인 것 같지만 결국은 심판의 모델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삶의 축복은 말씀을 따라 간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모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사람에게만 허락됩니다.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다까? 아브람처럼 말씀을 좇아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따라서 살고 있습니까? 롯의 비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을 따라 다녔고 사람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은 그 사람들로 인해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말씀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성경과 예수님과 설교입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화육화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설교는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따라가야할 삶의 동기는 이 세가지 말씀으로 부터 나옵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관찰하시고 묵상하시면 갈 길이 보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진정으로 모시면 우리의 길은 인도하십니다. 예배때 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약속의 땅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시고 순종하시면 믿음의 모델이 되십니다. 화육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며 믿음의 모델이 됩니다. 예배때 마다 선포되는 설교나 강론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믿음의 모델이 됩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순종함으로 믿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3. 아브람은 믿음으로 비전을 성취했습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순종함으로 믿음의 모델이 되어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했습니다. 아브람은 말씀을 순종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모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으로 부터 비전을 받았습니다. 비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이란 표현을 영어 성경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그 땅"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땅!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약속의 땅이 비전입니다. 한글 성경에 나오는 이상과 환상을 영어 성경은 거의 비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총 81회가 나옵니다. 비전은 일반적인 꿈과는 다릅니다. 영어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다른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비전은 인간의 꿈이 아닌 하나님의 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자기의 안목으로 비전을 가진 게 아닙니다. 자기가 꿈을 가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 비전을 따라 평생을 살았습니다.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보여주시는 비전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꿈이 아닌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우리는 이 비전을 소유와 존재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꿈은 대개가 소유의 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꿈은 존재의 꿈입니다. 그리고 소유의 꿈은 목표를 성공하는 꿈이지만, 하나님의 꿈은 목적을 성취하는 꿈입니다. 그래서 소유의 꿈을 성공하는 사람은 야먕가가 될 수 있지만 그 꿈을 이룬 다음에 허무감에 시달리거나 공허감에 시달릴 위험이 높습니다. 심지어는 더 이상의 그 무슨 가치가 없어 쾌락주의에 중독되기도 합니다.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불의를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존재의 꿈을 꾸는 사람은 목표가 아닌 목적을 성취하기 때문에 삶의 질이 높습니다. 가치의식이 풍부합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자존감도 강합니다. 물론 기쁨과 감사가 충만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꿈꾸는 존재의 사람은 불의를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비전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존재의 꿈을 가진 사람은 그 꿈이 비록 작을 지라도 감사하고, 반대로 그 꿈이 클지라도 교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을 성취했으면 그 자체로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꿈을 따라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쉬지 않고 기도합니다. 꿈은 같아 보이지만 이처럼 소유의 꿈과 존재의 꿈이 다릅니다. 소유의 꿈은 목표를 지향하지만 존재의 꿈은 목적을 지향합니다. 소유의 꿈은 목표를 성공하려고 하지만 존재의 꿈은 목적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려는 존재의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롯에 땅을 양보할 수도 있었고 애굽을 떠날 수도 있었으며 기근이 오고 자식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믈 믿는 믿음을 지키며 제단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믿음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도 가나안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데라가 가나안에 가고자 했던 것은 자기의 꿈이었기에 하란에서 멈춥니다.(창1131). 데라는 하나님의 비전으로 가나안을 가고자 했던 것이 아니고 자기의 계획으로 가나안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란에서 멈추고 죽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비전가운데 가나안을 약속의 땅으로 받고 말씀을 좇아 감으로 드디어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가시는 그 길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의 길입니까? 아니면 자기가 세운 목표를 성공하기 위하여 자기가 정한 길입니까? 아브람처럼 비전의 길을 보시고 비전을 성취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에 대하여서 우리는 아주 영적인 성구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던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을 잡아 둔 포로 수용소가 있던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에스겔 1장 1절은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라고 전합니다. 제가 가진 영어 성경 NLT번역본은 The heavens opened to me and I saw visions of God!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반복)
이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었던 에스겔의 영성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세 가지입니다. 열리는 하늘을 본 것이며, 선포하는 말씀을 들은 것이며, 내미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것입니다. 에스겔 1장 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특별이 임했고, 여호와의 권능이 에스겔 위에 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으로 읽어 보면 "The Lord gave a message to me! 주님이 나에게 메시지를 주었다고 표한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날마다 주님앞에서 얻으시면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영어 성경은 "I felt the hand of the Lord take hold of me" 즉 주님이 내 손을 붙드시는 것을 느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의 권능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야드"인데 직역하면 여호와의 손입니다. 주님의 손이 나를 강하게 붙드시는 경험이 있을 때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하트포프 한인교회 성도 여러분! 부족한 사람을 초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오늘 아브람의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믿음의 모델"과 "말씀의 순종" 그리고 "비전의 성취" 에 대하여 말씀을 섬겼습니다. 우리 모두 아브람처럼 믿음의 모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처럼 말씀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성취하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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