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神學)/웨슬리 신학

[스크랩] 썩지않는 영성, 웨슬리 (1/26 기독교타임즈)

우순(愚巡) 2006. 4. 17. 23:11
<독자투고>썩지않는 영성, 웨슬리
박용호목사 - 내동교회, 웨슬리전도학교 교감

 

김영석 전문위원 stigmata@kmctimes.com

 

다시 회복해야 할 웨슬리의 열정

박용호 목사(내동교회 담임, 웨슬리 전도학교 교감)

영국을 다니다 보면 광고판에 to let(임대,전세)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저게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데 누군가 i자가 빠진 것 같다고 하여? i 자를 넣어보니 toilet(화장실)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폭소하고 말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개그였다. 원래 의도와는 달리 들어가서는 안 될 것들이 들어가 본질을 잃어버리면 변질되고 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소금이 맛을 잃으면 쓸모없어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고, 복음에도 내가 들어가면 내가복음을 만들어 사이비 복음이 만들어지고 만다. 원래의 뜻과 의도를 알지 못하고 왜곡하는 일들이 많아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은 현실에서 오늘의 감리교회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년에 WMC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것 때문에 교단본부가 분주하고 설왕설래가 많다. 세계 감리교회가 한국에서 함께 모인다는 것은 한국기독교 120년 역사에 크게 환영하고 축하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심사숙고하고 점검해야 할 문제는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의 정체성의 문제다. 웨슬리의 감리교 정신과 열정을 상실할 때 감리교회는 WMC에서 M(Methodist)이 빠진 W.C(화장실)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감리교회가 얼마나 변질되었고 웨슬리의 열정을 상실하였는지 체감하고 있다.

웨슬리는 말하기를 “나는 감리교인들이 유럽이나 미국이나 그 어디에서나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감리교인들이 신앙의 능력은 없이 신앙의 형식만 남는 죽은 교파로 전락되는 것을 걱정한다. 만일에 감리교인들이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교리(Doctrine)와 정신(spirit)과 경건의 훈련(Discipline)을 확고하게 붙들지 않는다면 마치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열매 없는 형식적인종파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I am not afraid that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should ever cease to exist either in Europe or America. But I am afraid lest they should only exist as a dead sect, having the form of religion without the power. And this undoubtedly will be the case unless they hold fast both the doctrine, spirit, and discipline with which they first set out."

웨슬리의 에언적인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늘의 영국교회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형식만 남아 있는 교회가 되었고 6100개 교회에 33만의 작은 교단으로 전락되고 말았으며 사역자들은 대부분 형식적인 사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영국 웨슬리 대학(wesley College)의 조나단 파이(Jonathan Pye) 총장은 말하기를 “한국교회는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한국교회는 사람이 숨을 들이마셨을 때처럼 지금은 굉장히 부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부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영국교회도 한때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부흥과 선교에 열정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숨을 내 쉰 것처럼 줄어들었다고 더 이상 소망 없는 것처럼 생각하면 잘못이다. 이 나라는 소망이 있고 다시 부흥의 때가 올 것을 믿는다.”라고 하였다. 오순절교파나 성령운동하는 교회들 중에는 5만 명 이상 모이는 교회도 있다고 하며 브리스톨(Bristol) Cilfton에 있는 Trinity Church(성공회)도 2,000명 이상 모이는 살아 있는 교회임을 확인 할 때 부흥은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학과 정신과 그리고 열정의 상실에서 오는 문제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웨슬리의 가슴에 불타던 그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 감리교회는 왜 그 열정을 잃어버렸는가? 이제 우리는 맛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감리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웨슬리의 가슴속에 불타던 열정의 횃불을 다시 들고 한국에서 세계로 나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고 믿는다.

1. 웨슬리의 열정의 뿌리는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열정을 지속적으로 가질 만큼 온전하지 못하다. 모세의 경험이 말해주듯 스스로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열심으로 무엇인가 하려다가 하루아침에 재만 남아 후회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존재를 알고 부르심의 소명과 사명을 가질 때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 같이 제3의 불인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웨슬리는 1709년 6살 때 Epworth의 사택 화재 사건에서 기적적으로 구출 받은 후 어머니 수잔나 웨슬리가 표현한 대로 “장차 이 아이는 영혼의 불쏘시개로 사용하시려고 구해주신 것이다”라는 말을 간직하여 “오 주님 나를 받으소서. 불속에서 끄집어낸 타다만 부지갱이처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Receive me, O God, as a brand snatched out of the fire.") 웨슬리는 이 사건을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시는 Sign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웨슬리에게 있어서도 시행착오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훈련들이 신앙의 틀을 만드는 역할은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 속에 잠재되어 있던 열정을 막아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경건의 훈련들을 통한 좋은 습관들이 성령의 역사로 승화 될 때는 무한한 성장과 지속적인 열정의 불을 지피는 재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웨슬리가 말 한대로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의 특징 가운데 자기 의로 만족하며 사는 이들이 가장 깊은 잠에 빠진 경우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불이 아닌 자기 열정에 빠져 오히려 복음적이 되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 것이다.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웨슬리는 지성적으로 많은 경건서적을 통한 지적인 회심과 전통적인 영국교회와 천주교, 초대교부들을 통한 영성, 모라비안들을 통한 신앙을 통하여 그의 신앙이 고양된 것은 사실이지만 통전적인 영성을 갖지 못함으로 그의 심령은 마치 태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는 것과 같은 상태였다. 조지아주에서의 실패의 경험이나 방황은 열정의 뿌리가 인간적인 방법이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거나 지속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모세의 경험같이 조지아주에서의 실패는 그의 인생에서 광야였고 불타는 가시떨기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2. 웨슬리의 인생에서 BC와 AD

1738년 5월24일 8시45분은 그의 인생을 가름하는 분수령이었다.
자신의 실체를 철저히 인식한 웨슬리의 영혼은 방황하는 모습이었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이끌려 성령의 기름부음심이 그의 영혼에 불을 당겨 올더스케잇(Aldersgate)의 회심을 체험하게 되고 그 이후 확신에 찬 열정의 불길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된 것이다.

웨슬리가 옥스퍼드에서 휫 필드(White Field)의 부름으로 브리스톨(Bristol)로 간 것과 그곳에서 두 번째 하나님의 부르심의 Sign을 인식하여 전도자로 거듭난 사건은 매우 중요하다. 마지못해 브리스톨에 간 웨슬리가 본 것은 가난에 찌들린 광부의 얼굴이 석탄검정에 의해 검둥이 같았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주님의 부르심으로 느낀 것이다. 웨슬리는 결심하고 야외설교(Fild air Preaching)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첫 설교가 바로 눅4:17-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네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은 웨슬리 자신의 작은 우물에 갇힌 자신을 깨뜨리고 그를 통해 넘쳐흐르는 생명수가 어떻게 사막을 적시고 광야에 길을 만드는 주님의 역사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3. 영적인 거인의 발자취

존 웨슬리가 브리스톨(Bristol)에서 복음운동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것은 브리스톨 주교였던 버틀러(Anglican Church)에게는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버틀러는 웨슬리를 불러 충고한다. 왜 내 교구에 있는 사람들을 광신주의에 빠지게 하느냐? 그것은 영국교회에 도전하는 것이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니 그만두라고 하였다. 웨슬리는 그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다. “나도 영국교회에서 안수받은 신부이며 교수로서 복음을 전할 자격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광신주의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리고 교회에서 설교하지 못하게 함으로 밖에서 설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는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는 나의 교구이기 때문이다.”

일꾼의 가치는 외모나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다. 버틀러 같이 엄청나게 큰 교회에 앉아 있으면서도 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웨슬리같이 비록 New Room의 작고 보잘 것 없는 사역지와 머리 둘 곳 없는 사람처럼 이곳 저곳 말 타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지만 영적인 거인이 있는 것이다. 버틀러는 큰 사람인 것 같아도 브리스톨(Bristol) 대성당 안에서만 큰 소리치는 주교(감독)일 뿐이다. 웨슬리의 가문은 대대로 키가 작다. 167cm 이상되는 분이 없다. 그러나 속사람은 누구보다 큰 거인이었음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웨슬리는 브리스톨에서 감리교 부흥운동의 가장 이상적인 조직인 속회운동을 New Room을 통해 시작하였고 평신도 사역자들을 개발하여 평신도 사역을 시작했으며 New Castle 지역에서의 고아원 설립(Orphan House)과 돌봄의 사역 그리고 말 타고 영국 구석 구석을 다니며 복음 운동에 일생을 바친 삶을 보냈다. 특히 영국의 땅 끝이라고 할 수 있는 Cornwall 광산촌을 18번이나 방문하여 복음을 전한 것은 그의 가슴속에 불타는 열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특히 Cornwall 지역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관광객이 이곳에 가보니 오락시설 하나 없어서 불평하며 주민에게 물어보니 “백년 전에 존 웨슬리 목사님이 이곳에 다녀간 후로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거인의 발자취다.


4.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성령운동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3년간이나 훈련을 시켰어도 성령이 임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복음운동은 성령운동이며 열정의 뿌리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방법이나 프로그램이 방법이 아니라 성령이 방법이고 열정의 뿌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살필 것은 어느 때나 성령의 역사는 있었고 지금도 그런데 왜 우리는 웨슬리같이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인격이 하루아침에 한 순간의 감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이 영적인 거인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열정의 횃불은 서서히 타오르는 것이고 그것은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중국의 모소 대나무가 초기 5년 동안은 오직 뿌리만 깊게 밑으로 성장하다가 5년이 지나서는 1년에 15m 까지 자라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웨슬리의 열정은 경건의 훈련과 폭 넓은 지성의 깊이 그리고 철저한 영성의 뿌리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더욱 불탈 수 있었던 것이다. 웨슬리는 마지막 임종에 앞서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모든 것 중의 최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라는 말을 세 번 외치고 소천하셨다. 무엇이 Best인가?

세상에 태어나 누구든지 자기의 꿈을 이루려고 최선의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인(economy)문제인 돈에 목숨을 걸고 그것이 최선인 것처럼 추구하다가 영적인(soul) 문제가 더욱 중요함을 알게 되고 참된 인생의 진실(true)을 깨닫는다. 웨슬리는 with라는 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렇게 해석해본다. 전인적으로(whole person) 친밀하게(intimacy) 진리 안에서(truth) 매순간(hour)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말한다고 믿는다. 오직 한 책의 사람이기를 고집했던 분이기에 오직 은혜만을 추구하고 오직 복음만을 전하기로 작정했던 분이기에 그리고 단 5분도 헛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려는 열정으로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셨던 분이기에 그렇게 생각했으리라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이 왜 웨슬리의 가슴에 그토록 뜨거운 열정이 꺼지지 않았는지 하는 이유라고 믿는다.


5. 잠자는 한국 감리교회

영국교회(Anglican Church)는 첫째 정치 제도권에 매여 고착되고 종교화되고, 둘째 교회는 정치의 도구로 전락되어 생명력 상실했고, 셋째 국교화로 인해 복음증거에 소홀히 하고 귀족화 되었으며, 넷째 예정론의 영향으로 못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일반 서민들을 돌보지 않았고, 다섯째 극단적인 칼비니스트(Hyper Calvinist)인 퓨리탄의 잘못 된 성경해석이 노예정책을 정당화하는 잘못을 만들었다. 웨슬리는 이러한 영국교회의 제도적인 틀을 깨는 일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으나 교회론의 새로운 정립과 예정론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싸워 나갔고 그것으로 인해 생겨진 노예정책과 복지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변화되어가는 영국교회와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칼이었고 바람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웨슬리의 열정을 이어갈 것인가? 우선 잠자는 한국감리교회가 깨어 일어나야 한다. 웨슬리의 유산을 말하면서 제대로 계승하는 것은 없다. 속회운동이 중요하다고 하나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웨슬리의 영성의 뿌리를 말하나 우리들은 우리 목회에서 적용하지도 못하고 TD를 해야 목회를 제대로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오늘 우리들이 서 있는 곳을 보라. 어디에 서 있는가? 감리교회는 웨슬리에 대한 신학적인 위상을 성결교단이나 나사렛 구세군 보다 낫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장로교 목회자들조차 웨슬리를 공부하고 있는데 우리는 교단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총회에서 웨슬리가 말 타고 전도하던 마크를 형상화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영국교회가 그랬듯이 지금 우리는 정치에 목숨 걸고 돈 맛에 교리도 경건도 열정도 팔아먹고 말았지 않은가? 제도란 필요하지만 이미 사람이 중심이 되면 왜곡되는 것이고 개혁을 하지 않으면 부패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지금 귀족화되고 고착화되고 열정도 경건도 정체성도 잃어버린 시대에 서 있다.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부정적인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아침을 간절히 바라는 파수꾼의 심정이기 때문이다.
지금 영국에서는 에큐메니칼(ecumenical)적인 선교전략을 펼치고 있다. 모든 교단들이 위기의식을 절감하고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문화의 시대에 맞는 Fresh Expression 운동을 펼치고 있다.

결 론

이제 우리는 세계감리교대회(WMC)를 한국에서 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어두움 후에 빛이 오듯이 정확한 진단과 분석을 통해 웨슬리 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 손에 들린 보물조차 모르고 개발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빼앗긴다. 속회운동을 New Room의 전통에서 전도의 도구와 부흥의 도구로 발전시켜야 하고, 웨슬리 영성을 개발하여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서 열정을 회복하고, 웨슬리의 전도운동을 훈련하는 전도학교를 발전시켜서 전도의 바람을 일으키고 무엇보다 지도자 개발과 훈련을 통한 웨슬리의 리더쉽훈련에 힘써야 하며, 일찍이 평신도 사역에 눈을 떠서 헬퍼(helper)와 assistant(보조사역자) 들을 활용했던 것처럼 은사 전문화 훈련을 통한 평신사역자 개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제는 모세 complex 같은 목사 혼자 이끌어가는 방법은 안 된다. 이 외에도 웨슬리가 실천했던 사회운동이나 저술 등 많은 열정의 소산들은 열정의 방향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 가를 보여준 것이므로 연구해야 할 부분이라고 믿는다. 어느 때나 그렇지만 우리들도 한 순간 역할을 할 뿐임으로 다음의 말을 곱씹으며 겸손히 우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일꾼을 묻으시지만 당신의 일은 계속하신다.
"God buries his Workmen, but carries on his work"

출처 : 웨슬리 신학, 역사 연구원
글쓴이 : sola-grati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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