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神學)/실천신학

[스크랩] 생기목회의 비전과 철학<생기목회’를 위한 존 웨슬리 영성의 승화와 목회 적용>

우순(愚巡) 2006. 4. 15. 19:35
 

“생기목회의 비전과 철학”

- ‘생기목회’를 위한 존 웨슬리 영성의 승화와 목회 적용-


서 철 목사

인천 복지교회 담임,생기묵상원장

 

<차       례>


서 론

1. 웨슬리 설교와 ‘생기목회’ 마음(Mind)

  1) 생기 목회 2) 생기 성구 3) 생기 구호 4) 생기 교회관

2. 웨슬리 신학과 ‘생기 목회’ 틀거리(Paradigm)

  1) 선행은혜와 사랑의 섬김 2) 성령체험과 확증의 인도 3) 완전성화와 은혜의 변혁

  4) 복음전도와 선교의 열정 5) 사중표준과 중용의 조화

3. 웨슬리 영성과 ‘생기목회’ 비전(Vision)

  1) 영혼구원과 전인치유 2) 영성체험과 제자양육 3) 은사계발과 선교사역

  4) 완전성화와 성결생활 5) 사랑실천과 이웃 섬김

4.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과 ‘생기목회’ 실천(OrthopraxisⅠ)

  1) 말씀강론원 양육 2) 중보기도 체험 3) 성례전 강화 4) 찬양 사역 활성화

  5) ‘영적-역동적’ 성전 건축

5. 웨슬리의 ‘은혜의 조직’과 ‘생기목회’ 실천(OrthopraxisⅡ)

  1) 교회속의 교회 2) 영성체험 소그룹 3) 선교 지향적 선교회

  4) 은사 그물망 (Charisma Networking)과 팀 사역 5) 웨슬리 영성 발원지 

6. 웨슬리의 ‘은혜의 책임’과 ‘생기목회’ 실천(OrthopraxisⅢ)

  1) 교회연합 섬김 2) 선교단체 동역 3) 시민단체 연대 4) 민족구원 공조

  5) 이미지선교정책(Image Mission Project)

결 론

서   론

먼저 저의 목회철학과 비전을 일괄하여 설명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드릴 제안은 “‘생기목회’를 위한 존 웨슬리 영성의 승화와 목회 적용”입니다. 목회자는 분명한 목회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성경해석과 영성체험에 대한 뚜렷한 자기 입장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정통교리(Orthodoxy)와 정통체험(Orthopathy) 그리고 정통실천(Orthopraxis)을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절대성을 믿는 웨슬리 복음주의자입니다. 또한 교회와 목회의 중요성을 확신하며 목회자의 역할과 평신도 동역자들의 사역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좀 더 폭넓게 생각한다면 개신교의 만인사제설을 따라 하나님의 모든 사역자들이 다 성직자이므로, 복음전도의 동역자 리더쉽을 공유하고 새로운 마인드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목회를 아픔과 상처로 희망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영적인 사건의 체험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기를 불어 넣는 생기목회는 웨슬리 목사님의 신학과 영성과 사역에서 그 Mind와 Paradigm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존 나이스 비트와 하비 콕스가 지적했듯이 21세기는 감성문화와 영성 추구의 시대이며, 오순절 신학자 도널드 데이턴과 빈슨 사이난이 분석했듯이 21세기 영성을 이끌어 갈 오순절 신학의 기초는 웨슬리 신학과 영성입니다. 따라서 21세기를 섬길 우리들 목회자는 웨슬리의 영성을 승화시켜 현대 목회에 적용하는 ‘생기목회’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서술은 단문으로 짧게 하고 필요할 때마다 보충설명을 자세히 하겠습니다.



1. 웨슬리 설교와 ‘생기목회’ 마음(Mind)


1) 생기 목회

목회는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정체된 교회와 목회자는 인원과 재정과 조직을 먼저 구합니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와 목회자는 비전과 마인드와 사명감을 강조합니다. 제 목회철학은 교회를 생기를 불어 넣는 비전과 은사의 복음공동체라고 확신하는 것이며, 목회를 말씀강론을 통해 생기를 불어 넣는 영적인 사건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사도행전 6장의 말씀처럼 말씀을 섬기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헌신해야 하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3b-4).

목회자는 말씀강론으로 생기를 불어 넣어 아픔과 상처로 희망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확실하게 위로와 소망을 준다는 믿음의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하는 근원적인 치유를 체험케 하는 확신입니다. 생기를 잃어버린 현대인은 지금도 여전히 복음을 전해 듣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복음전도는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생기를 불어 넣어 인간들에게 다가 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감격적인 구원 사건입니다. 생기는 히브리어 j'Wr(루아흐)로 하나님의 숨, 곧 성령입니다. 이 생기가 들어갈 때 사람은 생령이 되고 살아납니다.


요약하면, 교회는 생기를 불어 넣는 비전과 은사의 복음 공동체요, 목회는 생기를 불어 넣는 치유와 변혁의 구원사건이며, 목회자는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말씀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과 말씀을 섬기는 말씀 강론가, 그리고 기도에 전무해야 하는 영성 추구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섬기는 복지교회 재정에 관해 15년 동안 거의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스로 그렇게 했습니다. 제 소견에는 모든 시간을 다 투자해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며 재정을 확충한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2) 생기 성구

생기목회의 철학은 두 군데의 성경 구절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 7절과 에스겔 37장 5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5). 생기는 흙덩어리를 생령이 되게 하며 마른 뼈들을 살게 합니다. 목회는 흙덩어리 사람을 생령으로 만드는 변혁의 새 창조 사건이며, 마른 뼈처럼 완전히 죽어 버린 절망의 사람들을 살게 하는 소망의 사건입니다. 위르겐 몰트만의 말처럼 하나님은 희망이시고 성령은 생명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강론과 중보기도에 전념하시어 성도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게  되면 사람들이 생령이 되며 살아나는 감격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목회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을 확신해야 합니다.


3) 생기 구호

목회는 생기를 불어 넣는 구원사건으로 정하고, 교회는 “생기를 불어 넣는 교회” 혹은 첨가해서 “생기를 불어 넣는 비전과 은사의 복음공동체”로 주제화 합니다. 표어가 매해 바뀌어 복잡해지기에 성도들이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혹시 아십니까? 어떤 교회는 매월 또는 매주 표어가 바뀝니다. 바쁜 현대인은 무감각하고 잊어버립니다. 단순하고 주제화된 표어는 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전 교인의 일체감을 조성합니다. “생기를 불어 넣는 교회”와 “생기를 불어 넣는 목회자”는 단순하지만 느낌이 분명합니다. 복지교회는 아이들까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기를 불어 넣는 교회' 와 '생기를 불어 넣는 Vision Maker 서철 목사'에 대해 일체성을 가지고 있어서 사역하는 데 효율성이 있습니다.


4) 생기 교회관

생기를 불어 넣는 교회는 세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꿈을 파는 비전 마트로서의 교회,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성소로서의 교회, 인생의 역전극을 연출하는 믿음의 스타디움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합니다. 교회는 꿈을 파는 비전 마트다! 교회는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성소다! 교회는 인생의 역전극을 연출하는 믿음의 스타디움이다! 비전마트는 소망을, 사랑의 성소는 사랑을, 믿음의 스타디움은 믿음을 말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아우르는 교회관입니다.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영원성을 창출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대한 분명한 비전과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 목회자 자신부터 교회와 목회와 복음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질 때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고 사람들을 생령이 되게 할 수 있으며 살게 할 수 있습니다. 생기목회는 교회의 중요성을 확신하는 생기 교회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2. 웨슬리신학과 ‘생기 목회’ 틀거리(Paradigm)


1) 선행은혜와 사랑의 섬김

웨슬리 신학의 출발점은 선행(先行) 은혜입니다. 선행은혜는 말 그대로 앞서가시는 은혜입니다. 인간의 공적 이전에 하나님이 먼저 다가오신 은혜입니다. 인간의 다가감보다 선행하신 하나님의 다가오심의 틀거리는 사랑의 섬김을 말합니다. 생기목회의 첫 째 틀거리는 사랑의 섬김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며, 목회는 사랑의 실천이고, 목회자는 사랑과 축복의 사도입니다. 몰론 권면과 회개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섬김이 전제될 때 진정한 가치가 있고 영향력이 있습니다. 목회자는 사랑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2) 성령체험과 확증의 인도

웨슬리 신학의 독창성은 성령체험입니다. 1738년의 올더스게잇 회심은 성령의 체험의 결과입니다. 웨슬리는 마음의 내적 종교를 강조했고 체험을 신학의 원리로 삼았습니다. 생기목회는 이론을 말하지 않고 체험을 말합니다. 생기 목회는 체험에 의한 구원의 확증을 나누고 인도하는 사역입니다. 목회자는 성령의 체험을 통해 분명한 구원의 확증을 가지고 성도들을 구원사건에로 인도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생기목회는 확증의 인도입니다.


3) 완전성화와 은혜의 변혁

웨슬리 신학의 정체성은 완전 성화입니다. 완전성화는 일부 반대자들의 오해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웨슬리 신학의 정수이며 정점입니다. 웨슬리는 은혜를 루터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루터는 은혜를 과거의 죄에 대한 용서로 해석했고, 죄를 용서해주시는 우리 밖에 계신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루터의 법률적인 서방 기독교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영성적인 동방 기독교적 해석을 따랐습니다. 즉 은혜란 과거의 죄에 대한 용서만이 아니라 현재를 변혁시켜 미래의 의에 대하여 희망을 갖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은혜 이해에 있어서 웨슬리는 어거스틴과 맥을 같이 합니다. 웨슬리는 루터가 말한 우리들 밖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 신학을 “extra nos가 아닌 in nobis의 신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용서를 포함하는 변혁입니다. 생기목회는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 법률적인 선언이 아니라 현재의 변혁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갖게 해주는 역동적인 진행형 사건입니다. 생기목회는 은혜의 변혁을 믿고 기대하며 구체화하는 영적 사역입니다.


4) 복음전도와 선교의 열정

웨슬리 신학의 탁월성은 복음전도의 실천성입니다. 웨슬리는 열정적인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생기목회는 복음전도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선교사역의 틀거리를 갖습니다. 틈새선교의 대행자, 문화선교의 전위대, 그리고 특수 선교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회자 자신이 웨슬리처럼 직접 전도를 해야 합니다. 포스트모던이나 정보화 사회에서도 복음전도는 할 수 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는 일은 해야만 하는 사명입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저 같은 사람을 통해서도 성령님은 저희 지역의 국회의원과 지질공학 박사를 전도해서 감리교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생기목회는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믿음으로 복음전도의 사역을 직접 하는 것입니다.


5) 사중표준과 중용의 조화

웨슬리 신학의 특징은 사중표준에 나타난 통합적 가치관과 아름다운 중용의 철학입니다. 웨슬리 신학의 사중표준은 성공회의 삼중 원리인 성경, 이성, 전통에다가 체험을 추가한 네 개의 신학원리를 말합니다. 아우틀러가 이 말을 사용한 이래 웨슬리 신학의 공식 용어가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성경의 우선성 아래에서 이성과 전통과 체험을 다 소중하게 인식했습니다. 조종남 박사는 이를 창의적 종합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를 ‘통합적인 가치관에 따른 중용의 조화’라고 부릅니다. 웨슬리 신학은 양자택일로 가지 않고 양자통합으로 갔습니다.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혼합주의적인 양자통합으로 간 것이 아니라, 복음의 순수성과 신앙의 경건심을 견지하며 조화를 연출하는 중용적인 양자통합으로 갔습니다. 생기목회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때 중용의 조화를 이루도록 아름다운 화음을 연출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목회자는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섬기는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홍사중의 말처럼 힘을 앞세우는 보스가 되지 말고 섬김을 통해 영향력을 전달하는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목회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에 비유됩니다. 다양한 음색, 다양한 음정, 다양한 악기들을 조화시킴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연출하는 예술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중용의 조화를 통해 성도 개개인이 받은 은사를 극대화 시키며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키는 아름다운 화음의 연출자입니다.


3. 웨슬리 영성과 ‘생기목회’ 비전(Vision)


1) 영혼구원과 전인치유

웨슬리 영성의 핵심은 영혼구원과 전인 치유입니다. 이 둘은 본성적인 은혜와 결과적인 은혜의 양면으로 하나의 사건입니다. 은혜는 본성적으로는 영혼을 구원 시키지만, 결과적으로는 마음과 육신도 치유합니다. 진정한 구원은 진정한 치유를 동반합니다. 은혜는 구원이며 회복이고, 치유이며 새 창조의 변혁입니다. 생기목회는 영혼구원과 전인치유의 비전을 갖습니다. 지금은 비록 마른 뼈 같을 지라도 반드시 살아나 큰 군대가 되며 생령이 될 거라는 비전입니다.


2) 영성체험과 제자양육

웨슬리 영성의 승화는 영성체험과 제자양육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은 은혜의 반복적인 체험을 통해 은혜의 사건이 지속되고 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성체험을 위한 프로그램과 제자양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저는 좋은 만남을 통한 TD 사역과 예수 전도단의 DTS 훈련 그리고 사랑의 교회에서 주도하는 제자화 양육과정을 통해 좋은 성과를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이사로 있는 기독교 영성 연구소와 함께 수도원의 영성과 웨슬리 영성을 현대 목회 현장에 맞도록 응용하려고 합니다. 생기목회는 영성 체험과 제자양육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비전을 갖습니다.


3) 은사계발과 선교사역

웨슬리 영성의 꽃은 은사계발과 선교사역입니다. 웨슬리 영성에서 근대 오순절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근대 부흥과 성장, 그리고 선교라는 말은 웨슬리 영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생기목회는 철저하게 성령께서 성도 각자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계발하고 웨슬리 목사님처럼 선교사역에 전적으로 헌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건은 전적인 헌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생기목회를 추구하는 목회자는 선교사역을 위하여 먼저 자신을 철저하게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들도 생기가 충만하게 되어 자신이 받은 은사를 따라 선교사역에 헌신하게 됩니다. 생기목회는 성도들의 은사를 계발하고 선교사역에 헌신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비전이 있습니다.


4) 완전성화와 성결생활

웨슬리 영성의 열매는 완전 성화와 성결 생활입니다. 생기목회는 성도들의 삶을 거룩하게 바꾸도록 섬기는 사역입니다. 웨슬리가 완전성화의 가능성을 동기의 순수성과 완전한 사랑에서 찾았듯이,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완전이지만 생기목회는 웨슬리가 추구한 완전성화와 성결한 삶의 비전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성결과 성화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성화는 거룩함에 이르는 과정이고 성결은 거룩함이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5) 사랑실천과 이웃 섬김

웨슬리 영성의 새로운 씨앗은 사랑실천과 이웃 섬김입니다. 웨슬리는 사랑의 혁명가였고(김진두), 웨슬리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이웃 사랑으로 확대되면서 사회적 성화를 이루었습니다.(김홍기) 사랑이 능력입니다. 어거스틴의 Caritas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면 영혼은 순수해지고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생기 목회는 사랑의 실천과 이웃을 섬기는 진정한 예수 사랑에 대한 비전을 갖습니다.



4.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과 ‘생기목회’ 실천(OrthopraxisⅠ)


1) 말씀강론원 양육

웨슬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을 말했습니다. 은혜의 수단 보다는 은혜의 방편이 좀 더 신앙적인 번역입니다. 은혜의 방편 중에 말씀탐구가 첫 번째입니다. 말씀을 탐구하는 일은 신앙의 뼈대를 갖추는 일이고 기초를 다지는 일입니다. 묵상은 히브리어로 hg:h;(하가)입니다. 숨을 멎도록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지요. 또 강론은 rB'D;(다바르)입니다. 흩어진 것을 정돈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강론하는 것은 말씀을 숨이 멎도록 깊이 생각하는 것이며 흩어진 성구들을 체계적으로 연결시켜서 맥을 잡는 것입니다. 생기목회의 토대는 말씀의 묵상과 강론을 통해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와 사역자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2) 중보기도 체험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그 중에도 중보기도(도고, 딤전 2:1)가 아주 중요합니다. 피터 와그너는 기도를 영적 전투라고 했습니다. 영적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목회자 자신이 기도해야 합니다. 신앙은 영적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중보기도가 이루어지도록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중보기도학교의 과정과 중보 기도실, 그리고 중보기도자의 연대가 중요합니다. 생기목회는 중보기도의 구체적인 실현을 기획하고 섬깁니다.


3) 성례전 강화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 세 번째는 성례전입니다. 웨슬리는 특히 성찬예전을 강조했습니다. 성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웨슬리는 가톨릭의 화체설이나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지양하고, 칼빈처럼 그리스도의 임재를 믿는 임재설을 주장합니다. 생기목회는 웨슬리처럼 성찬예전의 강조는 물론이고 세례예전도 진지하게 기획하고 섬깁니다. 웨슬리안은 가톨릭도 아니고 칼빈주의적 개혁파도 아닙니다. 그 둘의 장점과 영성을 성경 안에서 통합한 중용적인 개혁파입니다. 그럼으로 성례전을 진지하고 경건하게 기획하고 섬겨야 합니다. 생기목회는 성찬예전과 세례예전 뿐만이 아니라 모든 절기 행사를 사전에 철저하게 영적 컨셉으로 기획하고 진지하게 집례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합니다.


4) 찬양 사역 활성화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 네 번째는 찬양 사역입니다. 웨슬리는 찬양사역을 성경, 기도, 성찬처럼 은혜의 방편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동생 챨스와 함께 기독교 신학사와 예배사에 중요한 은혜의 방편으로 올려놓았습니다. 하비 콕스는 21세기 교회의 새로운 틀거리를 성령운동과 찬양에서 찾습니다. 세계적으로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도 성령운동과 함께 찬양사역을 강조합니다. 찬양사역이 역동적으로 도입된 예배가 생기가 충만하고 은혜를 체험하게 합니다. 찬양대와 찬양단 그리고 관현악단 같은 다양한 찬양사역을 도입해서 예배를 축제와 체험의 사건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체계적인 찬양사역의 시스템을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기목회는 찬양사역의 역동성을 통해 신령과 진정의 영적인 예배를 하게하고 깊은 영성을 체험하게 합니다.


5) ‘영적-역동적’ 성전 건축

웨슬리의 은혜의 방편들을 종합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역동적’ 성전 건축이 뒤따라야 합니다. 유대교의 ‘성전’이나 가톨릭의 ‘성당’과 달리 개신교는 ‘예배당’이라며 건물의 의미를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 점에서 건물은 중요합니다. 하나는 성전이든 성당이든 예배당이든 이름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의 예술성에서 보면 건물은 살아있는 언어이기 때문이며, 마지막 하나는 건물의 기능성 측면으로 성전(예배당)이 하나님을 역동적으로 만나는 영성의 기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말씀탐구, 중보기도, 성례전, 찬양사역이 복합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설계된 영성의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제단은 예전과 찬양사역을 고려해야 하고, 회중석 좌우나 지하실 또는 다른 공간은 중보 기도실로 설계해야 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강론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해야 합니다. 또 어린이 예배실은 어린이들의 의견을 청취하여 어린이의 컨셉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1층은 식당과 친교실을 겸한 선교회 사무실과 바자회실을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생기목회는 성전건축을 복합적인 영성의 기능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려합니다. 성전 또는 예배당이 영성의 공간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6. 웨슬리의 ‘은혜의 조직’과 ‘생기목회’ 실천(OrthopraxisⅡ)


1) 교회 속의 교회

웨슬리 사역의 성공은 조직운영 때문입니다. 웨슬리의 영성이 성도의 회심과 교회의 갱신 그리고 사회의 변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은혜의 조직이 일정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웨슬리의 조직의 출발이었던 Holy Club은 소그룹의 전형적인 모델이며 경건교육의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교회학교의 위기에서 왔습니다. 교회는 범람하는 문화와 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을 양육해야 하는 데, 그 대안이 있다면 ‘교회 속의 교회’입니다. 현실적으로 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는 대략 50대나 60대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가 될 때 까지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교회 사역의 방관자이거나 침묵자입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데 지금의 구조로는 어린이들이나 청년들이 책임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섬길 수 없습니다. 과감하게 마인드를 바꾸고 틀거리를 바꾸어 전체적인 유기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교회를 섬기도록 훈련하고 경영하게 해야 합니다. 이럴 때 위기 속의 현대 교회는 ‘교회 속의 교회’를 통해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생기목회는 ‘교회 속의 교회’를 통해 어린이와 청년기 때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훈련을 시킵니다.


2) 영성체험 소그룹

웨슬리의 사역은 속회 조직으로 대변되는 소그룹 조직입니다. 제가 미국Fuller 신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소그룹의 중요성을 배웠는데 웨슬리의 소그룹을 강조했습니다. 지금 교회는 또래 모임인 선교회와 동네 모임인 속회 그리고 일감 모임인 부서 조직이 중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임들이 그 본래의 영적인 동기와는 다르게 무의미하고 느슨하게 움직입니다. 이것은 현대인들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는 성향과 새로운 세대인 3040 세대 및 1020 세대의 정서와는 아주 다릅니다. 새로운 목회는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또래 모임, 동네 모임, 일감 모임을 영성체험의 소그룹으로 승화시키거나 당회의 동의를 얻어 역동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기목회는 기본적으로 모임의 동기를 영성체험에 둡니다. 영성체험이 선행된 사람은 선교도 교육도 봉사도 친교도 다 참여합니다.


3) 선교 지향적 선교회

웨슬리의 조직은 철저하게 선교 지향적이었습니다. 웨슬리의 선교 지향성은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는 표현 속에 잘 들어 있습니다. 생기목회는 선교회 조직을 또래나 동네 또는 일감중심이 아닌 선교 중심적 조직으로 회복시킵니다. 교회내의 조직은 교육과 친교와 봉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우선적인 것은 선교입니다. 선교지향적 조직이 되면 교육과 봉사와 친교가 가능하지만 선교의 비전을 상실하면 교육은 전통의 승계만 되고, 친교는 우리들만의 우물 안 잔치가 되며, 봉사는 물질적인 자선사업만 됩니다. 교회의 조직은 철저하게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지향성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선교회의 선교지향성은 선교의 비전 공유가 선결과제이며, 선교사역의 구체적인 사명이 있어야 하고, 선교단체와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적입니다. 생기목회는 교회의 모든 조직의 마인드와 우선순위를 선교지향적으로 승화시키고 강화하며 재구성합니다.


4) 은사그물망 (Charisma Networking)과 팀 사역

웨슬리의 조직은 그물망 조직이었습니다. 속회와 밴드와 신도회가 그물처럼 선교를 지향하며 얽혀 있었습니다. 교회 조직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선 은사 그물망(Charisma Networking)과 팀 사역이 절실합니다. NCD 연구소 같은 전문 기관에 의뢰해서 교회와 성도를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교회와 성도 개개인의 은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한 후에, 그물망처럼 서로를 연결하여 선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선교전문가를 육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역자들이 사역을 잘 하도록 기존의 상하조직의 틀거리가 아닌 좌우연합의 팀 사역체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팀 사역은 사역의 전문성과 새로운 영감을 창출하여 교회성장과 사역효과를 높입니다. 생기목회는 봉건적인 구시대의 수직적 구조를 지양하고 은사를 따라 그물망의 조직을 결성하고 수평적 구조를 지향함으로, 사역의 전문성을 제공하는 팀 사역을 통해 새로운 교회성장의 희망을 갖습니다.


5) 웨슬리 영성 발원지

웨슬리운동은 웨슬리 자신의 영성을 진앙지로 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새로운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는 웨슬리 영성의 확산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넓은 강물도 작은 골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듯이 영성의 발원지 역할이 필요합니다. 골물이 냇물이 되고, 냇물이 강물이 되듯이 웨슬리 영성의 발원지가 곳곳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웨슬리 영성의 근간은 성경의 우선성과 성령체험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성과 전통의 다리가 있어 어우러짐을 이룹니다. 생기목회는 모든 조직 곧 개인, 소그룹, 연합조직을 웨슬리 영성의 발원지로 만드는 사역입니다.



7. 웨슬리의 ‘은혜의 책임’과 ‘생기목회’ 실천(Orthopraxis Ⅲ)


1) 교회연합 섬김

생기목회는 웨슬리의 선교비전을 따라 교회연합운동에도 깊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미 풀러 신학교의 연구는 지역장악이 선교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웨슬리 정신을 따라 에큐메니칼 운동에 교회에 적극적으로 섬김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종래의 조직중심이나 인맥중심 또는 교파간 자리 나눔식은 곤란합니다. 저는 그래서 교회연합운동이라고 하지 않고 섬김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내 이름 우리 교회 이름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섬기는 교회연합 사역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회 연합 섬김은 영적인 일치 위에서 시작하는 지역 연합의 중보기도 사역으로부터 섬김을 시작해야 합니다. 생기목회는 지역의 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역자들을 섬기는 연합사역을 지향합니다.


2) 선교단체 동역

생기목회는 선교단체와의 동역을 중시합니다. 지역교회는 교파성과 전통성 그리고 조직성에서 강점을 가지지만, 선교단체는 선교의 비전과 마인드 그리고 사명감에서 강점을 가집니다. 이 때문에 지역교회와 선교단체는 서로 대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이상적인 관계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지역교회는 선교단체로부터 선교의 노하우를 배워야 하고 사역자 훈련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교파간 또는 교회간 경쟁적인 선교행태를 지양하고 선교단체와의 공조를 통해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선교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선교 단체가 들어 와서 사역을 하도록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회기적인 교회 성장과 부흥이 일어납니다. 생기목회는 선교단체와 사역을 함께 하는 동역의 목회입니다.


3) 시민단체 연대

생기목회는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모색합니다. 기독교가 가진 화육의 교리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지 교회는 사회로부터 유리되고 경원시되는 게토가 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안티기독교 사이트가 등장하고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혹평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탄의 공격도 있고 일각의 피해의식에 젖은 몰이해와 편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아니 상당 부분은 우리들 기독교가 자초한 일입니다. 이제 기독교의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열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기독교를 이 사회의 섬김의 주체로 다시 세워야 합니다. 예민한 이념문제나 정치 지향적인 시민단체와의 공조는 조심하되, 순수한 봉사 시민단체나 NGO 기구등과는 연대하는 것이 교회의 사역을 넓히는 것이고 목회의 장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권이나 지역의 유지행사를 하는 연대는 절대적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연대 속에 교회와 목사의 정체성을 함몰시키고 천착시키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기목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려는 건강한 시민운동 단체들과 연대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4) 민족구원 공조

생기목회의 또 한가지 관심은 민족구원의 공조입니다. 저는 역사의 동인을 하나님으로 믿는 목사이기에, 역사의 동인을 물질로 보는 막시스트나 역사의 주체를 사람으로 보는 주체사상 추종자들과는 이념적으로 다릅니다. 그래서 친북 좌파적 성향을 반대합니다. 다만 평화통일과 자유민주주의의 보장이 전제되는 통일운동과 동포사랑의 표현으로서의 북한 주민 지원에 대해서는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단체들과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북한 선교가 보장되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 방면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이 필요하고 통일운동 및 북한선교를 수행하는 단체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일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는 시대의 요청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21 세기 한반도의 화두는 통일과 선진 한국입니다. 그리고 문화 입국입니다. 이런 민족의 시대적인 요청에 대하여 교회가 깊은 관심을 갖고 공조할 때 선교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생기목회는 민족구원을 위해 다양한 사역자들과 공조를 합니다.


5) 이미지선교 정책(Image Mission Project)

생기목회의 마지막은 이미지선교 정책입니다. 작금의 교회 상황은 세 가지 이유로 기독교의 Image를 위협 받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에서 상처 받고 교회를 떠난 기독교인이었던 사람들의 비난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타종교의 도전 때문이며, 마지막 하나는 보수적인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친북 좌파적 '정치-언론' 의 교묘한 훼손 책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에 대하여 단순하게 분노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정책의 주제가 이미지 선교입니다. 이미지선교 정책은 교회를 좀 더 체계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것입니다. 호교론적이거나 전투적인 선교 전략이 아니라 간접적이고 설득력 있게 다가서는 선교전략을 말합니다. 또 현대 사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언론-방송에 대한 정책도 중요합니다. 동시에 우리 교회가 자리한 지역공동체의 작은 공간에서도 이미지 선교가 필요합니다. 지역신문을 이용하거나 봉사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투에서 승리하기 보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새로운 시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생기목회는 복음전파를 통한 정도 성장론과 함께 이미지선교론을 병행하여 성장하는 concept입니다.



결   론

웨슬리의 영성을 현대 목회에 적용하는 생기목회는 한마디로 사랑의 섬김과 성령의 체험을 통해, 삶의 의미와 희망을 상실하고 아픔과 상처 속에서 신음하는 현대인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 목회 사역입니다. 이를 위해서 목사는 철저하게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하며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사역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온유함과 겸손함이 비굴함이 되지 않도록 분명한 목회 철학과 선교비전을 품고 강하고 담대하게 사역해야 합니다. 온유하지만 강하고 겸손하지만 담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내가 아닌 우리들과 함께 일하심을 인식하고 교회의  사역자로 세운 동역자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부교역자들도 부하로 보기 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인식하고 팀 사역을 해야 하고, 장로와 기획위원회원들도 장정에 있는 그대로 중요한 일을 협의하는 동역자로 함께 선교사역을 기획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선교회나 속회의 지도자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로 깊이 인식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 장구(We-Section)'를 통해 내가 아닌 우리가 사역하는 가치를 보여 주었으며, 선교사역을 수행하면서 늘 다른 사역자들을 동역자로 불렀습니다.

미래의 교회는 목사의 독재나 특정인들의 관료주의를 거부합니다. 아니 이미 제가 섬기는 복지교회 같은 젊은 세대들이 중심인 교회에서는  동역자 지도력이 검증되었습니다. 생기목회의 컨셉은 전문 사역자 위주의 '동역자 지도력(Co-Leadership)입니다. 교회 안팎의 모든 사역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선교사역의 동역자(Co-Worker or Fellow-Worker for Mission)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리의 사중표준이 말하는 중용의 조화가 생기목회의 우선적인 덕목입니다. 웨슬리 신학과 영성은 통합적인 가치관을 실천하는 중용의 조화입니다. 이런 중용적인 조화의 동역자 리더쉽으로 섬기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주안점이 있습니다. 목적은 영적이어야 하며, 전략은 효율적이어야 하고, 인사는 공정해야 하며, 재정은 투명해야 하고, 절차는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생기목회는 목적의 영성성, 전략의 효율성, 인사의 공정성, 재정의 투명성, 그리고 절차의 합리성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생기목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목회자 자신의 목회철학과 선교비전, 그리고 복음전도의 열정과 수도사적인 경건의 영성과 온유하고 겸손한 종의 자세입니다. 목회가 목회자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은 자명합니다. 단순한 외향적 성공이나 통계적 성장만을 지향한다거나, 반대로 깊은 영적 통찰력 없이 무조건적으로 기존의 교회와 전통을 비난하는 것은 가벼운 처사입니다. 목회자는 신중해야 하고 생각이 깊어야 하며 선교전략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목회자 자신이 말씀강론의 전문가여야 하고 기도생활의 모델이어야 하며 사랑의 실천가여야 합니다. 그 위에 뜨거운 열정과 전적인 헌신이 덧붙여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생기목회는 '생기를 불어 넣는 교회'를 지향합니다. 말씀강론과 중보기도로 생기를 불어 넣는 복음적이고 영적인 목회를 통하여, 사람이 생령이 되며 살아날 것을 확신하는 비전의 목회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생기목회는 선교사역의 전문성에 기초한 동역자 지도력과 Image Mission Project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회철학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선언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3b-4).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인 영성의 뿌리는 웨슬리의 영성과 신학과 복음전도 사역에 있습니다.


기도하며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위대한 초청으로 이 글을 맺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로 와서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1장 28-30절)

출처 : 생기묵상원
글쓴이 : 생기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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