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
본문 : 마가복음 16장 1 - 8절
제목 :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
누가복음 24장 36-41절의 보도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앞으로 어떤 일들이 자기들에게 닥치게 될지 몰라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축복의 기도를 해주셨는데, 이런 shalom(전쟁터의 포성 소리 가운데 느끼는 평화)의 평강이 부활절 예배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여러분들에게도 임하실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끝 부분에 보면 한 가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내용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더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에 제자들은 너무 기쁘고 좋았지만 오히려 믿어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도 너무 감격스러운 일을 경험하면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라고 말을 하는데, 제자들도 이런 감격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 기뻐서 믿지 못하는 감격적인 ”사건“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어지지 않는 ”사실“,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사실”, 혹은 “경험하리라 기대하지 못했던 경험” 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초“이성적인 사건이며, ”초“과학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몇 가지 분명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로 마가복음 15장 44-46절과 요한복음 19장 34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무덤에서 도망친 것이 아니라 확실히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은 자만이 부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가사상태에 있던 사람은 부활을 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마가복음 16장 4절과 마태복음 27장 62-66절에 따르면 큰 돌로 무덤의 입구를 막아 놓았고, 파수꾼이 지키고 있으며 무덤을 인봉해 놓았기 때문에 무덤 밖에서 무덤 안으로 사람이 접근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돌 덩어리를 밀치고 무덤에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무덤 안에 매장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만 가능합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는 마가복음 16장 6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 있던 곳에 시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며, 네 번째 증거는 갈릴리에 제자들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나타나셨다는 것이며(마가복음 16장 7절), 다섯 번째 증거는 마가복음 16장 19절의 말씀처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재림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본문이 증언하는 이런 증거들을 근거로 볼 때에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16장 1절에 말씀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라고 보도합니다. Billerbeck이라는 사람의 보도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매장된 시신에 향품을 바르지 않으며, 또한 시신을 방부제 처리를 하여 “미이라”를 절대로 만들지 않는 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세 여인은 유대의 일반적인 장례 절차를 무시하고 이미 매장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려 했을까요? 이 세 여인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하셨던 “내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 는 말씀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부활하실 예수님의 시신을 몇 일 이라도 더 썩지 않은 채 보존하기 위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으로 갔던 것입니다. 이 세 여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모했던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6장 19절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마가복음 16장 4절에 따르면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갈 때에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는 “큰 돌” 이었습니다. 이 큰 돌은 세 명의 여인들의 힘으로 제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주리요”라고 이 여인들은 걱정을 하면서 무덤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이 큰 돌은 내 힘으로 제거할 수 없는 부활하신 주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부활의 믿음을 갖는데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바로 우리의 이성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부활과 창조의 능력과 은혜를 제한하고 배척합니다. 하나님의 논리와 하나님의 능력을 증언하는 성경을 우리의 이성이 거부를 하면 부활하신 주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큰 돌을 우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아주 간단하게 그 방법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러졌으니...” 무덤을 향해 세 여인이 걸어 올 때에 큰 돌이 무덤의 입구를 가로 막고 있어 걱정을 하였는데 그들이 올려다보니(αναβλεπω/aufblicken) 큰 돌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무덤을 가로 막고 있는 큰 돌은 세 여인이 올려다 볼 때에 옮겨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큰 돌은 사람이 옮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옮기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올려다본다“(오로지 마가복음만 사용한 단어)은 하나님과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확신하며 기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에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αναβλεπω)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마태 14장 19절)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던 주님처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부활의 주님을 만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