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니라"(계{7:9~17) 2012-0617

우순(愚巡) 2012. 6. 19. 14:27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니라"

 

   <요한계시록 7:9~17>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오늘은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2006년 6월 30일 총회 실행부위원회에서 6월 넷째주일을 순교자 기념주일로 지키도록 결의하였습니다. 순교자기념주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사업을 전파하기 위해, 교회를 지키며, 믿음으로 행하다 순교, 순직, 납치, 고난 받은 감리교인을 추모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순교자 터툴리안의 말입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니라"  용인의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입구의 순교비에 돌로 새겨놓은 문구이기도 합니다. 터툴리안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는데 , 기독교인들의 순교를 보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터툴리안은 설교 제목처럼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고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무죄를 입증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 교회는 생명력을 유지했습니다.

 

  

  순교자 하면 따오르는 인물 가운데 한 분이 주기철 목사님이십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 직전 감옥에서 나오십니다. 일본 경찰이 이 정도 고문을 하고 기롭혔으면 마음을 돌리겠지 하고 시험한 것이라고 합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교회로 돌아오자 일본 경찰대와 고등계 형사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기철 목사님은 유명한 설교를 하십니다. " 다섯 가지 종류의 기도"입나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2.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3.나의 노모와 나의 처자와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4.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5. 내 영혼을 주꼐 맡기나이다.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하실 것을 미리 예감하시고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마지막 설교를 하셨습니다.

 

   1.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 목사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보고 있었습니다. 

 2.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목사님은 감옥으로 돌아가 다시 투쟁할 각오을 하시면서, 짧은 고난은 견딜 수가 있지만, 장기간의 고난은 견디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할까봐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3.나의 노모와 나의 처자와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4.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5. 내 영혼을 주꼐 맡기나이다.

   

루마니아 침례교회의 조셉 톤 목사님은 루마니아 공산당 정권과 독재자들에게 저항했던 유명한 복음주의자입니다. 조셉 톤 목사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신학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다미로 대답했습니다. 순교신학입니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학밖에는 없습니다. 순교신학입니다. 후에 동구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개방의 물결이 일자, 복음주의 잡지사의 기자가 조셉 톤 목사에게 소감을 묻자 "두렵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박해받고 고난 받는 것을 은혜로 알고 주님을 믿었는데, 이제 고난이 은혜인줄을 모르는 성도들로 교회가 채워질까봐 두렵습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은 참 신앙은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빌1:29>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순교자는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다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은 사람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자는 세 가지 조건을 갗출 때 순교자라 불렀습니다.

 

  1. 죽음이 복음 증거로 인한 것이어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순교는 마르튀스(Martys)인데 이는 본래 증언 또는 증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화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곧 죽음과 연결되기 때문에 순교란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죽는 죽음입니다. 자연사는 순교가 아닙니다.

 

2. 죽음이 복음의 적대자들에 의해서 '당하는 '죽음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로 적대 세력에 미움과 박해를 받다가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자살은 순교가 아닙니다.

 

3. 죽음이 자발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배교하거나 타협하면 살 수 이었음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기꺼이 죽음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순교는 주님을 따라 죽는 것입니다. 한자어 순교(殉敎)는 "따라 죽을 순자( 殉)'와 가르칠 교(敎)자로 되어 있습니다. 순교란 가르침을 따라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복음을 가르쳐주신 주님을 따라 죽는 순교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또 '따라 죽을 순'은 죽을 사자와 열 순을 합쳐 놓은 말입니다. 이는 고대 시대 왕이나 가장이 죽으면 그 신하나 노비를 열흘 안에 죽였던 순장 풍습에서 나온 말입니다. 순교란 따라 죽는 것입니다. 성도의 순교는 주님을 따라 죽는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순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복음전도 초기의 순교로 전통 종교 인들에 의한 순교입니다. 주로 유교와 무속신앙으로 부터 박해를 받아 순교했습니다.  2. 일제강점기의 순교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 때문에 순교하였습니다. 3. 공산주의자에 의한 순교로 북한지역의 공산화와 6,25 전쟁중에 일어난 순교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역사도 순교자들의 피를 먹고 성장했습니다. 일제 말기인 1944년 4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권원호 전도사는 1942년 1월 15일 경성지방법원 재판정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투옥되었다가 순교합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중투쟁을 하다 순교한 사람으로는 최인규 권사님이 계십니다 동부연회 천곡교회 최인규 권사는 신사참배와 궁성요배를 거부하고 일장기 경례를 거부하고 신앙을 지키다 대전형무소에서 죽었습니다. 

 

   공산주의하에서 순교당한 인물로는 김유순 감독과 조상문 목사님이 계십니다. 김유순 목사님은 북한 공산당이 남침을 했을 때 선한목자론을 내세우며 서울을 지키시다가공산주의자들들에게 납북되어 순교하셨습니다. 그 당시 교회를 지키자는 서울 사수론자들과 일단 피난을 가자는 전쟁현실론자은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를 놓고 대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유순 목사님은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선한목자론을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까? 라고 논의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묻고는 순교의 길로 자발적으로 가신 것입니다. 

 

    아현교회 담임목사였던 조상문 목사님도 순교하셨습니다. 전쟁이 나자 아현교회 이군혁 목사님은 담임목사에게 피난을 가라고 하고 교회를 자기가 지키겠다며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러 갔는데 조상문 목사님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계신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습니다. 왜 피난을 안가셨나요? 조상문 목사님이 말하셨습니다. "어제 권사님 말씀을 듣고 한강을 건너려고 아현동 고개 넘어 공덕동까지 갔는데, 남아 있는 교인들의 모습이 에 밟혀 도저히 말길이 떨어지지 않아 돌아왔어요" 이군혁 권사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죽을 자리로 찾아 온 조상문 목사님을 보고 감격한 것이지요. 예상대로 조상문 목사는 8월 23일 인민보위부에 연행되었고 북한으로 납치되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다 파괴하였습니다. 남은 교회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이고 유물론자들이기 때문에 물질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봅니다. 또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종북좌파의 주사파들은 물질을 움직이는 사람을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어차피 다 유물론자들이고 무신론자들입니다. 우리 기독교신앙은 역사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고 믿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역사관이 다르고 세계관이 다릅니다. 그런데다가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을 일으켜 무고한 백성을 죽음으로 이끈 사람들입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의 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공산주의가 사라지고 자유민주주의가 꽃을 피우며 예수 복음의 나라가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한반도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북한 공산주의가 사라지길 원하고 김일성 3대 세습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북한 어리이들의 굶주림만큼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더욱 기도해야 할 것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살아 있는 후손들이, 후배 성도들이,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성도들과 순국순직한 선열들의 공로를 추모하고 기리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사도 요한의 묵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 7:9~17>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하나님 앞에 선 성도들!  13절은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묻습니다. "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절,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갈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성도들입니다.  그 날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14절의 말씀은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사람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어린양의 피로 씻어 흰 옷을 입게 합니다.

 

     이 흰옷을 입은 자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순교자들입니다. 믿음을 지킨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순교자 기념 주일입니다. 순교란 가르침을 따라 죽는 것이고, 증언자의 삶을 지키다가 죽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큰 환난 속에서 예수의 증언자로 살기 위해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죽는 것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킨다고 합니다. 지금 환난이 없을 때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지켜서 큰 환난이 왔을 때에 견딜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순교자기념주일입니다. 순교란 가름침을 따라 죽는 것이요, 증언자의 삶을 지키다가 죽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큰 환난에서도 예수의 증언자로 살기 위하여,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 죽는 것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킨다고 합니다. 지금 환난이 없을 때 우리의 믿음을 견고히 지켜서 큰 환난이 올 때 견딜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장인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남겨 줍니다.

 

    <히브리서 11: 36~40> "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9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8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도들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바로 순교의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같은 태평성대에 예수를 잘 믿으면 교회 안에서 오히려 대우를 받고 직분을 받아서 적당한 계급장을 단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아니라 예수를 증언만 해도 죽는 시대, 그리고 사람들이 돌로 칠 뿐만 아니라 톱으로 켜서 몸을 자르는 그 시대에도 예수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정금 같은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이렇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으로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는 신앙은 사금 같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순교자의 신앙은 정금 같은 신앙입니다. 불론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니하는 정금같은 신앙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누가 순교할 수 있습니까? 누가 순교신앙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정금 같은 순교의 신앙은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제가 네 개의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1.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순교할 수 있습니다.

 

        <히12: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1)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이 톱으로 자기를 켤 때에도 ‘아멘.’ 하고 믿음을 지키며 순교하였습니다

 

   2.  에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성도가 순교할 수 있습니다.

 

       <히3:1>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 사람은 재미로 교회를 다닙니다. 전통에 묶여 교회를 다닙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에만,자신의 신앙을 고정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말 깊이 생각한 사람은 깨닫습니다. ‘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구나.’

 

   3.  예수님의 아심을 믿는 성도들이 순교할 수 있습니다.

 

       <계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안다는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정말 확인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진심이 통하는 것, 우리의 진의가 통하는 것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냐고.’ 말입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의 환난과 궁핍을 아신다고 하는 믿음 때문에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4. 성령충만한 삶을 사는 성도가 순교할 수 있습니다.

 

      <행7:54~60>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 때에 이 스데반이 두 가지 기도를 드립니다.

 

1)”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2)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스데반은 성령충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꼐 자기의 영혼을 맞겼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에  자기를 죽이는 자에게도 하나님이 죄를 돌리지 마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자기를 죽이는 자도 용서합니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이 저지른 죄악이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중보기도합니다. 성령충만한 성도의 신앙은 순교신앙입니다. 미워하고 증오하고 정죄는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생명과 평화와 사랑과 용서입니다.

 

 

 오늘은 순교자 기념주일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의 위로를 받으면서, 성령충만한 믿음으로 살다가 환난을 당할지라도 믿음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죽음이 올지라도 이 믿음을 포기하지 아니하고, ‘아멘,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라며 예수를 증언하는 순교의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