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神學)/조직신학

삼위일체론

우순(愚巡) 2006. 11. 4. 06:22
1. 한 영원한 신성 안에 성부.성자.성령이라고 불리우는 영원하고 본질적인 구분이 있다는 기독교의 교리를 말한다. 서방 기독교계에서의 고전적인 형식은 "한 실체 안에 세 인격"(una substantia et tres personae)이고, 동방에서는 "한 존재 안에 세 휘포스타시스"(treis hypostaseis, mia ousia)였다. 삼위일체를 지지해 주는 용어들이 신약성경과 초대 교회에서 발견되어 지지만, 이 교리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4세기에 이르러서이다. 이 교리가 이렇게 정착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의 요인이 있지만, 그 중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극단적인 견해들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 그 주된 이유이다. 그 하나는 마르시온(Marcion)이 주장한 것으로서, 창조자와 구속자는 하나가 아닌 두 신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우스(Arius)가 주장한 것으로서, 로고스는 완전한 신도 아니고 완전한 인간도 아니라는 것이다.

요한의 글과 바울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바,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헬라의 로고스 개념과 동일시 한 것 때문에, 기독교 신학은 불가피하게 이 로고스 혹은 영원하신 아들과, 성부 혹은 신적 근원자 사이의 관계를 정립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학적 정립의 필요성은 다소 미흡한 신학자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해결책을 미리 제시하고 나왔기 때문에 더욱 가속화 되었다. 군주론자들이나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의 단일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각 인격간의 구분이 무시되어 성부가 고난당하고 죽으셨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종속설자들은, 로고스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육신하셨다고 하는 교리를 사실상 부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논쟁은 정치적.교회적 다툼 때문에 더욱 복잡해졌다. 게다가 동방 교회에서는 헬라어를 사용하여 이 교리를 표현하고 서방에서는 라틴어를 사용하였는데, 이 두 언어 사이의 통일된 용어가 없음으로써 혼란이 가중되었다. 우선 자기들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해 놓고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야 하였다. 아타나시우스가 이끄는 동방의 정통 교회의 목표는, 하나님의 통일성과 성부.성자.성령 사이의 동일한 위치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수년 간 동방의 교회에서는 정확한 용어의 사용 문제에 관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다가,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이 제시한 문구와 해석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 우시아(존재)에 세 휘포스타시스(존재의 구분)"라는 것이다. 이 문구는 서방 신학자들을 만족시켰는데, 이는 이전의 터툴리안이 만든 라틴어 문구인 "한 실체에 세 인격"이라는 것과 병행될 수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 교리는 신비에 속한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면서도, 신학자들은 이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거스틴의 정통적 견해는 후대의 신학자들의 연구에 기준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에 따르면, 하나의 신적 실재 안에 매우 중요한 세 구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구분은 인격, 혹은 휘포스타시스라고 불리우는 것으로서, 꼭같이 영원하고 동등하다. 그 각각의 인격 속에 신성이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인격들이 가능한 한 가장 가까운 통일체를 형성하고 상호 관통하고 있지만<참조: 페리코레시스>, 각 인격은 서로에 대한 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독특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성부는 나지도 않고 발생하지도 않는다. 성자는 친자관계로서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나신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참조: 필리오쿠에> 나오신다.

이 세 인격 간에는 어떤 질적인 차이와, 그 활동에 있어서의 차이가 있다<참조:전유론>. 그러나 전통적인 견해에 따르면, 각 인격은 서로의 활동과 작용을(예를 들어, 창조, 구속, 성화와 같은)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진다. 중요한 사실은, 어떠한 신학자도 한 신성 안에 자의식을 가진 서로 다른 세 존재가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와는 반대로, 어거스틴의 유명한 유비(ana-logy)에 의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지성, 의지, 그리고 그들 사이의 연합이라는 세 가지 구분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비유된다.



이 교리가 하나님의 세 가지의 활동을 연구하는 데로 가지 않고, 삼위일체적 하나님의 내적 생명에 관한 사변적인 이론에 치우치기 때문에, 때로는 신앙과 불신앙의 문제에 주력을 기울이는 신학자들에 의해서 주변으로 밀러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개혁자들은 이 교리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주된 관심은 기독교 신앙고백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밝히는 데에 있었다. 즉,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이다. 이 교리의 가장 과격한 분해는 개신교 자유주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그들에 있어서 신학은 필연적으로 직접적인 종교체험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공리로 받아들여졌다. 신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프로그램을 반대하였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계시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반성하는 과정에서 정당화 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본성 자체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브루너는 이 교리를 방어적 교리라고 불렀다. 바르트는 이러한 신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흐름에 역행하였다. 그의 논증에 의하면, 이 교리가 계시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내셨고, 이것이 삼위일체라고 하였다. 이 교리는 기독교 교의학에 있어서 가장 중심적이면서 독특한 교리이다. 바르트의 이와 같은 작업 덕택으로 이 교리에 대한 새로운 흥미가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유비(analogy)와 개인적 유비의 두 가지의 유비가 사용되었다. 전자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것이 삼신론으로 기울 가능성이 많다고 하며, 후자에 대해서는 이것이 세 인격의 구분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한다고 한다.



2. (1) 삼위일체 교리의 근거: 삼위일체 기독교 교리는 초대 기독교 공동체 내의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특수한 신앙체험이라는 것에 그 궁극적 발판을 가지고 있다. 이 기본적인 체험은 삼위일체 교리보다도 더 오래 되었다. 그리고 이 체험이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삼중의 존재로서 기독교인들과 만나셨다는 사실로 짜여져 있었다. 1) 창조주, 구원의 역사의 주님, 하나님 아버지 및 재판자로서의 하나님. 그런데 이 분은 구약성경에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2)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물 가운데에 나타난 주님으로서의 하나님, 이 분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고 또 '부활하신 분'으로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고 계셨다. 3)성령으로서의 하나님, 그런데 초대 교회 신도들은 이 성령을 새로운 생명의 힘,하나님의 왕국의 신비스러운 능력으로서 체험하였다. 그리하여 이상과 같은 세겹의 존재로서 나타나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유일신 신앙-이것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이교와 자신들을 따로 구별하는 데 가장 뚜렷한 특징을 이루는 표였다-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고대 기독교 세계의 신자들을 가장 심각하게 괴롭힌 문제였다. 또한 이 문제는 사변적인 신학에 가장 강한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서구의 형이상학 연구를 내내 고무시킨 한 자극이기도 하였다.



기독교 역사 시작 후 처음 두 세기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일련의 여러 다른 해답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들 중의 어떤 것도 철저히 사변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삼위일체를 해석하는 데 다양성이 존재하는 까닭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타났다. 요한복음 신학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그 유효성을 이해하는 데에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마가복음성육신 신학에서 그 얘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가 인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택함받는 것을 나타내며 이 택함받는 것이 성령의 강림을 통해서 완수되어졌다고 이해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정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인물상을 통해 나타나는 바,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보일 때의 그 예수가 가진 특수한 인격적 성격이 무엇인가라는 개념 작용들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성령은 한 인격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힘으로 인식되었고 또 성령은 비둘기라는 형태로서만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성령은 삼위일체에 관한 사변과정에서 상당히 뒤로 쳐지게 되었다.



(2) 신플라톤주의적인 주제의 도입: 그리스도가 로고스라는 요한복음서의 그리스도 이해는 신플라톤주의적인 로고스 철학의 영향 아래에서 사변신학의 주제가 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한 분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삼중으로 현현하신다는 것 사이의 관계성에 대해서 사변적인 관심이 발달해 간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존재에 관한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을 통하여 해답이 주어졌다. 모든 존재, 모든 합리성, 모든 개념화를 뛰어 넘어 존재하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은,자기의 신적인 초월성을 스스로 벗어버리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자의식을 가진 존재로 화해 가는 그 첫번째 행위 안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신적인 '누스'(nous) 곧 신적인 세계이성으로 인식하신다. 그런데 이 신적인 세계이성을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누스는 성부로부터 발출하는 '성자'라고 특징지어 말하였다. 초월적인 하나님이 자의식을 가져가는 그 다음 단계는, 이 신적인 '누스'가 신적인 세계 곧 이 세계의 이데아(idea)가 하나님의 의식의 그 구체적인 내용물로서의 그 개별형태로 나타나는 데에 있다. 신플라톤주의 철학 안에서는 '누스'와 세계의 이데아 양자 모두가 초월적인 하나님의 실체(hypost-ases; essences; natures)로서 불려진다. 기독교 신학은 실체에 관한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을 도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은 이 실체에 관한 이론을 성부와 성자의 관계성을 해석하는 그 출발점으로까지 받아들였다. 즉 신플라톤주의적인 실체 이론을 가지고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신플라톤주의의 로고스 이론과 관련하여 사변적인 기독론이 형성되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실체 이론을 기독교 신학이 도입한 것은 처음부터 세 신적인 존재들이 각기 서로 맺는 관계성에 대하여 일종의 가치 평가를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왜냐하면 신플라톤주의에 있어서 실체화(hypostatization) 과정이란 곧 동시에 존재의 감소과정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원근거로부터 흘러나오면서 그 신적인 존재는 그 초월적인 원줄기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그 존재는 약화된다. 그리고 존재의 감소는 마침내 물질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물질이란 물질 자체로 놓고 볼 때에는 신플라톤주의에서는 '비존재'(non-being)라고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신플라톤주의적인 실체 이론을 삼위일체에 대한 기독교의 이해 방식에 옮겨 놓으면서 다음과 같은 위험성이 뒤따르게 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여러 다른 존재들로 현현하시는 것-기독교인의 신앙체험으로 본다면, 성부.성자.성령-은 그 자체 내에서 계급이 매겨지는 신들의 계급구조로 변형될 수 있으며, 따라서 다신론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러한 위험을 의식적으로 피하려고 하였지만 그리고 로고스 기독론으로부터 해석되어 나오는 바 삼위일체의 세 현현 존재들이 본질상으로 완전히 같다는 것이 강조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라는 것이 세 동등한 계급의 신들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빠질 위험성이 생겨났고, 또 이런 생각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관념을 몰아내고 자기가 대신 들어서기도 하였다.



(3) 삼위일체론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들: 1) 아리우스 논쟁: 3세기경이 되자 신플라톤주의적인 실체 이론을 가지고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체계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언제나 새로운 투쟁들만을 낳는다는 것이 이미 분명해졌다. 그런 투쟁들 가운데 가장 높은 정도의 투쟁이 소위 아리우스주의 논쟁이었다. 그리고 이 투쟁 위에서 이 삼위일체론의 가장 근본인 난점들이 가장 강력한 신학 및 교회 정치적인 면에서 실제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아리우스(Arius,336년 사망)는 안디옥 신학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안디옥 신학파는 에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에 강한 역점을 두고 있었다. 아리우스는 하나님이란 관념에 대해 신학적인 해석을 하면서 하나님이 한 분이심에 대해 하나의 공식적인 일치를 수립하려는 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옹호하다 보니까 아리우스는 성자와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 본질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동일본질설은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강조하고 있는 바였다. 그런데 양자간의 논쟁은 그 출발부터가 신플라톤주의적인 본체라는 공동기반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이 본체라는 개념은 신약성경 자체와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본체에 대한 형이상학을 기반으로 하여 벌어지고 있는 이 논쟁의 연속이 신약성경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개념에로 이끌려 갈 것은 뻔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품격이 동일본질(homoousia)이냐 아니면 유사본질(homoiousia)이냐 하는 물음 같은 것들이었다.



아리우스의 기본적인 관심사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옹호하기 위해 성자와 성령이 성부 하나님과 본질상 같다는 것을 논박하는 것이었고, 또 아리우스의 이 관심사는 계속 그대로 견지되었다. 따라서 아리우스의 논리대로라면 성자는 "성부 하나님 휘하의 제2인자로서의 신"이 되는 것이었다. 즉 예수는 단지 그 겉모습으로만 하나님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비록 그가 피조물들 중의 최고의 정상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그는 역시 피조물의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아리우스는 한 오래된 전통적인 기독론을 끌어다 대었다.

그런데 이 기독론은 2세기 로마에서 이미 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기독론이었다.소위 말하는 '천사-기독론'(angel-christology)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에 의하면 성자가 이 땅 위에 내려오신 것은 천사들 중의 최고 우두머리가 이 땅 위에 내려온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이 우두머리 천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의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정도까지는 천사장 미가엘(Michael)과 동일시된다. 이 옛날의 천사-기독론을 보면, 이미 그 관심사가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보존하려는 데에 있었으며 또 모든 이교에 대항하여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이 침범당할 수 없는 그 구별의 표를 보존하려는 데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자는 그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나 성자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적 존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자로서 하나님께 최대한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아리우스는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 전통적인 기독론과 손을 잡았다. 즉 기독교가 하나의 새로운 그러면서 아주 고상한 형태의 다신론을 도입하고 있다는 모든 비난에 대해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는 관념임을 옹호하려는 목적에서 아리우스는 이 옛 전통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수호하려는 이 시도는 난처한 결과를 낳았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하면 신적인 로고스가 사람이 되신 분인데 이 견해에 따르면 그분은 피조물 측에 끼어들어가게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받음을 필요로 하는 피조물의 세계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한 피조물에 불과한 그리스도가 이 세상을 구속하는 일을 어떻게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일반적을 기독교 교회는 아리우스가 취한 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보존하려는 그러한 공식적인 시도가 구속의 실재성을 불행한 지경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보며 거부하였다.



이 때 교회의 정통성을 대변하는 주요인물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373년 사망)였다. 이 아타나시우스의 출발점은 철학적이며 사변적인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구속의 실재성 즉 구원의 확실성이란 것이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인간이 구속을 받는다는 것은 단지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일 때만 가능하며, 하나님이 완전하신 본질이 인간성 깊숙히 뚫고 들어가 그 인간성의 육욕적인 형체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때에만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충만한 본질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셨다고 할 때에만 그것이 육신의 부활로 보장이 되는 바,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한 측면에서 인간의 신성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 교리에 관한 신학과 형이상학을 서방교회에서 발전시키는 일에 결정적인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서, 삼위일체론을 인간학과 결부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관념에서 출발하여 삼위일체의 신비를 인간의 인격 안에 삼위일체의 흔적을 발견함으로써 해명해 보려고 시도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단순한 인식작용에서도 나타나 보이는 삼위일체적인 구조분석으로부터, 인간의 자의식 및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식하게 되는 종교적인 명상의 행위 속에서까지 삼위일체적인 구조가 확실히 드러나 보인다는 것을 규명하고자 시도하였다.



2) 구원의 연속 단계로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 교리의 두번째 모델은-처음에는 이단이라는 의심을 받았다-신학 뿐만 아니라 서방 사회의 사회형이상학에서까지 영향력을 끼친 피오레의 요아킴에게서 나온 이론이었다. 요아킴은 구원사의 과정이 성부.성자.성령, 이 세 연속 단계로서 계속 실현되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다. 삼위일체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하나의 '혁명의 신학'으로서 매우 큰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견해가 혁명적인 선취작업을 통해 성령이 다스리는 제3단계가 빨리 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여러 노력들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3) 삼위일체에 대한 아타나시우스의 개념: 소위 아타나시우스 신조(약500년경)라고 불리우는 것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최종적으로 교의신조화된 것,즉 'una substantia-tres personae'(한 본질에 세 위격)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이론에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런데 실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 신조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과 그 하나님이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세 위격으로서 자기를 계시한다는 것, 이 기독교의 두 기본적인 계시 내용들을 그 신비성 자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피하고 다만 이 두 가지를 모두 단단히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이 신조를 분석해보면 이 신조의 관점은 구원과 구속의 실재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그 근본적인 가정이 계속 보유되어 있고 동시에 합리적인 유일신론이 희생되지 말아야 한다는 그 관심사가 명확히 살아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주 특징적인 것은, 후대 기독교 세계의 역사 가운데에 합리주의적인 철학이 세워지고 따라서 삼위일체적인 측면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물음이 쇠퇴하던 그 모든 시대에는 반삼위일체적인 흐름들이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반삼위일체 흐름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의식적으로 아리우스와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예들 들어 16세기의 휴머니스트 계몽운동과 소위 이탈리아의 반삼위일체주의자들이 그러하였다. 그리고 반삼위일체주의와 18세기의 예수전 연구들은 직접적인 관련성이있었다. 18세기의 예수전 연구자들 중 가장 연배가 오랜 사람들, 예를 들어 벤투리니(Venturini), 칼 바르트(Karl Bahrdt: 스위스의 교의신학자인 칼 바르트와는 다른 인물임), 라이마루스(Reimar-us) 등은 예수를 이 세계 내에 이성을 종교를 보급시킨다는 그 자체의 목적을 가진 은밀한 계몽운동 질서의 시행자(agent)로서 그렸다. 그런데 이들은 동시에 반삼위일체주의자들이며 삼위일체 교의에 대해 합리주의적 비판을 가하는 선구자들이었다. 신존재 증명에 관한 칸트학파의 비판은 삼위일체 교리를 격하시키는 데에 더욱 더 큰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헤겔은 기독교 교의를 관념론적 영역에까지 끌어올리려는 그의 철학구조를 통하여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자신의 철학체계의 기본 바탕으로 삼았으며 무엇보다도 그는 역사를 절대정신이 자의식을 가져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하였다. 보다 최근의 신학 동향을 보면 삼위일체론은 실질적으로 그리스도 단일주의로 대치되었다. 이 그리스도 단일주의는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변증법적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1960년대에 소위 '신 죽음의 신학'이라는 것이 나타나자 초월적인 신에 대한 신앙의 가치가 저하되었고 따라서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도 마찬가지 처지가 되었다. 기독교 교의는 순전히 인간학적으로만 해석이 되었고 또 기독교 교의란 인간이 공동적으로 받들고 있는 관념(the idea of human togetherness)이라는 것으로 축소 해석되었다. 이것은 종교철학이 기독교 교의에 대해서 늦게나마 승리한 것이요, 기독교 교의는 그 자세의 근거를 잊어버렸나 혹은 포기한 꼴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월성은 과학과 사회학에 의해서 재발견되었다.1970년대의 신학은 종교에 대해 순전히 인간학적인 해석을 가하는 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종교가 초월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을 한번 더 새롭게 재발견하였다. 이에 따라 신학은 새로운 형태로 삼위일체 문제를 대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현존으로 체험한다는 면에서의 이 삼위일체는 이제 배제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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