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축복(창1:28~31, 요3:16~21) 2015-0125 주일
사랑과 축복
<창 1:28~31>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요 3:16~21>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1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아직은 새롭다는 말을 쓸 수 있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2015년도 새 해는 보다 더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시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말씀은 <사랑과 축복>입니다.
<사랑과 축복>은 하나님의 마음이며 성경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품고 살아야 할 거룩한 마음입니다.
[강복, 축복, 분복]
복을 정확하게 구분하면 강복과 축복과 분복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강복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강복하시도록 제사장이나 목사가 비는 복입니다.
분복은 하나님이 강복하신 복을 사람들이 나누어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시니 강복하십니다.
제사장이나 목사나 부모들들은 복을 비니 축복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을 나누어 받으니 분복을 받습니다.
이 중에 우리가 나눌 말씀은 축복입니다. 축복은 <복을 비는 행위>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강복하시도록 제사장이나 목사가 복을 비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대로 만인제사장직을 믿는 기독교인들이니 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강복하시도록 축복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강복하심을 생각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는 축복자의 삶 말입니다.
저는 16세에 성경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재미있는 동화처럼 성경을 읽거나 부모의 강요로 읽었습니다.
16세가 되어서 신학을 졸업할 때 까지는 논리를 생각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가고 목회를 하면서는 인간의 삶의 자리에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실존이 담긴 지극히 인간적인 삶의 자리를 드러내는 경전입니다.
하나님을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생생한 인간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아담을 만나고 노아를 만나고 아브라함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성경은 우리의 삶의 자리를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경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인간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강복]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복이라는 말만 듣고 너무 쉽게 기복주의로 매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압니다. 기독교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결코 탐욕으로 재물을 쌓아두기만 하는 기복주의에 천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베푸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강복을 계속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 때는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강복하셨고(창1:28),
홍수 후엔 언약의 조상 노아에게 강복하셨으며(창9:1~2),
바벨탑 후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강복하셨습니다.(창12:1~3)
하나님의 강복은 사람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했고(창27~28장), 야곱은 요셉에게 축복했습니다.(창49:22~27) 출애굽 후엔 제사장이 축복하면 강복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민6:22~27).
시편은 <복 있는 자>로 시작합니다.(시1편)
선지자들은 심판을 말하면서도 언제나 희망을 이야기 합니다. (렘29:11, 욜2:12~14)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아브라함처럼 복을 받습니다.(갈3:9~14)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주십니다.(엡1:3)
하나님은 천지 때 제일 마지막에 최고의 걸작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강복하셨습니다. 이 첫 번 째 하나님의 강복을 받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만난 날!
하나님이 사람을 처음 대면하신 날!
하나님이 사람에게 처음으로 말을 건네신 날!
하나님은 사람에게 강복하셨습니다. 복을 베푸셨습니다.
<창1:26~28> 2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3)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3)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그러나 인류는 죄로 인하여 대홍수의 심판을 받고 이 땅에서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가정을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 살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새로운 조상에게 강복하셨습니다.
홍수 후에 새 세상을 위해 선택된 노아의 가정을 처음 만났을 때도 강복하셨습니다.
<창9:1~3>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2 땅에 사는 모든 짐승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와,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것과, 바다에 사는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할 것이다. 내가 이것들을 다 너희 손에 맡긴다. 3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먹을거리가 될 것이다. 내가 전에 푸른 채소를 너희에게 먹을거리로 준 것 같이, 내가 이것들도 다 너희에게 준다.
아담은 창조의 조상이고, 노아는 언약의 조상입니다.
그 다음 인류의 조상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노아의 후손은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의 자리를 침범하다가 혼란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새로운 조상을 선택하셔서 부르십니다.
그게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 가운데 믿음으로 살려는 신앙인들의 첫 사람,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도 강복하셨습니다.
<창12:1~3> 1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시는 강복의 정신은 찬양시와 예언서에도 이어집니다. 찬양시를 모은 시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려 하심은 심판 중에도 언제나 희망을 말씀하시는 선지자들의 예언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렙29:11>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으로서,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는 주전 587년 유다가 망하기 전에 활동하던 예언자입니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다섯 왕을 섬겼습니다.
예레미야는 앗수르를 경고하고 바벨론의 등장을 경고했습니다.
주전 597년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에게 유다는 망합니다.
여호야긴 왕은 항복하고 유다의 상류층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나라가 쑥대밭이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예레미야가 지적한 불신앙은 정치적인 동맹, 불의한 야합, 음모, 우상 숭배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상할 때로 상하셨습니다.
심판을 받은 유대인들도 이 심판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생각이 아니다! 나의 생각은 희망이다.
요엘의 예언도 복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드러내줍니다.
<요엘2:12~14> 12 "지금이라도 너희는 진심으로 회개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금식하고 통곡하고 슬퍼하면서,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13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주께서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늘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으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신다. 14 행여 주께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복까지 베푸셔서, 너희가 주 하나님께 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물을 바칠 수 있게까지 하실는지 누가 아느냐?
이처럼 선지자들의 예언 속에도 하나님의 본 마음인 강복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선포를 언뜻 들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듣지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선포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강복>이 들려 옵니다.
하나님의 본 마음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본 마음은 구원이고 강복입니다.
[사람의 축복]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십니다. 강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도록 축복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강복과 함께 사람의 축복을 크게 두 갈래로 말씀합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축복이고, 다른 하나는 제사장의 축복입니다.
아버지와 제사장은 하나님의 강복을 받는 중요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아버지의 축복은 이삭의 축복과 야곱의 축복에서 두드러집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창27:25~29> 25 이삭이 말하였다. "나의 아들아, 네가 사냥하여 온 것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서, 너에게 마음껏 복을 빌어 주겠다." 야곱이 이삭에게 그 요리한 것을 가져다가 주니, 이삭이 그것을 먹었다. 야곱이 또 포도주를 가져다가 주니, 이삭이 그것을 마셨다.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아, 이리 와서, 나에게 입을 맞추어 다오." 27 야곱이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삭이 야곱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나의 아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주께 복받은 밭의 냄새로구나. 28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
29 여러 민족이 너를 섬기고, 백성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는 너의 친척들을 다스리고, 너의 어머니의 자손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마다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마다 복을 받을 것이다."
야곱은 요셉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창49:22~26> 22 요셉은 들망아지, 샘 곁에 있는 들망아지, 언덕 위에 있는 들나귀다. 23 사수들이 잔인하게 활을 쏘며 달려들어도, 사수들이 적개심을 품고서 그를 과녁으로 삼아도, 24 요셉의 활은 그보다 튼튼하고, 그의 팔에는 힘이 넘친다. 야곱이 섬기는 '전능하신 분'의 능력이 그와 함께 하시고, 목자이신 이스라엘의 반석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25 너의 조상의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고, 4)전능하신 분께서 너에게 복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위로 하늘에서 내리는 복과, 아래로 깊은 샘에서 솟아오르는 복과, 젖가슴에서 흐르는 복과, 태에서 잉태되는 복을 베푸실 것이다. 26 너의 아버지가 받은 복은 태고적 산맥이 받은 복보다 더 크며, 영원한 언덕이 받은 풍성함보다도 더 크다. 이 모든 복이 요셉에게로 돌아가며, 형제들 가운데서 으뜸이 된 사람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 두 아버지의 축복으로 출애굽의 구속사가 완성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으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핵심입니다.
그 이전에는 아담과 노아가 있습니다.
결국 창세기의 6대 인물인 이들을 하나님은 강복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축복과 함께 중요한 축복이 제사장의 축복입니다.
민수기서는 아론의 후손들인 제사장들이 축복할 일을 말씀합니다.
<민6:22~27> 22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빌라고 하여라. 24 주께서 너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켜 주시며, 25 주께서 너를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너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26 주께서 너를 고이 보시어서, 너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
이 축복권이 이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제사장이라 일컫기 때문입니다.
<벧전2:5~10>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과 같이 되었으니, 신령한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시오. 6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아라, 내가 골라낸 귀한 모퉁잇돌 하나를 시온에 둔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7 그러므로 이 돌은, 믿는 여러분에게는 귀한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집짓는 자들이 버렸으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돌"이요, 8 또한 "걸리는 돌과 넘어지게 하는 바위"입니다. 그들이 걸려서 넘어지는 것은 말씀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요,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요, 왕의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국민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그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0 여러분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그분의 백성이요, 전에는 자비를 입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자비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사랑입니다.
강복과 함께 사랑도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복을 베푸시고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한 마디로 잘 표현해줍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외아들 예수를 내주면서까지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외아들을 주사 영생을 얻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아들을 죽이시어 입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 마음은 성경 곳곳에 잘 나타납니다.
아담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창1:31)
사람이 범죄 했을 때는 구원의 길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5)
그리고 외아들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죽이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3: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요일4:9)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의롭다 인정해주셨습니다.(롬5:1~11)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이셨습니다.(엡1:4~6)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후회하셨습니다.
<창6:5~7> 5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7 주께서는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하고 탄식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사 사람의 생명을 이어갔습니다.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에도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호세아서에도 잘 나타납니다.
<호6:1~3> 1 이제 주께로 돌아가자. 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고, 우리에게 상처를 내셨으나 다시 아물게 하신다. 2 이틀 뒤에 우리를 다시 살려 주시고, 사흘 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니, 우리가 주 앞에서 살 것이다. 3 우리가 주를 알자. 애써 주를 알자. 새벽마다 여명이 오듯이 주께서도 그처럼 어김없이 오시고, 해마다 쏟아지는 가을비처럼 오시고,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신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
<요일4:7~21>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사랑 안에 거하면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심판 날에 담대하게 합니다.
요한 서신의 사랑 이야기는 하나님과 사랑이 하나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랑]
이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면 마땅히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우리는 그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이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곳에 기쁨이 있습니다.
매를 들어도 사랑으로 하면 사랑의 매가 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폭력이 됩니다.
비판을 해도 사랑이 있으면 굿 아이디어가 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인신공격이 되고 비난이 되고 선동이 됩니다.
사랑이 들어가야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때 비상약도 명약이 됩니다.
[좋은 성도]
좋은 성도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축복하는 성도입니다.
믿음으로 사시는 좋은 성도가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하며 살고 축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의 축복은 하나님의 복을 가져옵니다.(창12:3)
사랑은 사랑을 낳고 축복은 강복을 낳습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축복을 심으면 강복을 거둡니다.
인생을 살아보면 깨달음이 옵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며 사는 신앙생활이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 –사랑과 축복-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성도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가끔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 바르지 못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의 마음 가장 근본에는 사랑과 축복을 담고 분노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분노가 절제된 분노이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의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망각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한계를 잊어버리면 판단의 착오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그 대상을 미워하고 증오하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서서히 내가 그리도 싫어하는 그 사람을 닮아가고 있음을 어느 날 문득 느낄 수도 있습니다.
옛말에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며느리가 시집살이 하면서 시어머니를 미워하다가 자신도 닮아 가는 것이지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후에 처음 대면하시고 인간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강복이 하나님의 첫 번 째 말씀이고 첫 번 째 사역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배웁니다.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복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니까 강복하시지만 우리는 복을 주는 게 아니고 비는 자들이니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에게 속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자신 안에 계심을 느낍니다.
그래서 사랑과 축복입니다.
강복과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시니 강복이요, 사람은 복을 빌어주니 축복입니다.
제사장도, 목사도, 부모도, 형제도, 모두 다 복을 비니 축복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다고 말씀합니다.(요일4:7~21)
성령이 충만한 고린도교회에도 사랑이 필요했습니다.(고전13장)
성도들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해야 합니다.(히13:1)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고전13:13)
2015년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새로운 한 해라는 말도 이 번 주로 마지막이 됩니다.
바라기는 꼭 <사랑하고 축복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새 해, 축복하는 새 해,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고 이런 저런 불만스러운 일들이 있더라도
마음이 아프고 상처받는 일이 있더라도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만은 꼭 지킵시다.
사랑과 축복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성도의 가치입니다.
최고의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