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다(2012-0108) 주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다!
<로마서 6:1~5>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평안하십니까?
이 번 한 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은혜와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다! 언뜻 들으면 인본주의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할수록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1.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 조직신학 입장에서 바라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론도, 섭리론도, 구속론도, 종말론도, 교회론도 사람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 줍니다. 사람이 성경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사람을 창조하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시고,....결국 하나님의 이야기는 인간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요약하면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론 - 천지창조의 절정은 사람!-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음 받음
2) 섭리론 -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사람! -하나님은 구속사를 이끌 사람을 찾고 계심
3) 구속론 - 십자가 보혈의 최대 수혜자는 사람! - 예수님의 죽음음 사람의 영혼 구원
4) 종말론 -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은 사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를 사람에게 주심
5) 교회론 - 교회의 존재 목적은 사람! - 교회는 영혼구원을 위한 공동체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경을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최고의 피조물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우주를 다스리시며.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보리시기까지 하셨고,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시 창조하여 사람에게 주십니다. 교회는 이 모든 과정의 주인공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공동체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2. 오늘은 주님의 세례주일입니다.
오늘은 세례주일입니다. 교회력은 주현절 다음 주일을 세례주일로 지킵니다. 교회력의 기준 중 하나가 주현절입니다. 주현절이란 말 그대로 주님이(主) 나타나신(現) 절기(節)입니다. 매년 1월 6일이 주현절입니다. 성공회는 공현절이라고 하고 가톨릭릭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라고도 합니다. 성공회와 가톨릭의 표현에서 보듯이 주님이 공식적으로 나타나신 날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의 공식적인 나타나심! 언제일까요? 정통 기독교는 동방박사가 예수님을 찾아 온 날을 주님이 공식적으로 나타나신 날로 기념합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들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날이 공생애의 처음이라고 주현절을 세례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다음 세례주일이 곤란해집니다. 그래서 정통기독교는 성탄절은 주님의 탄생, 주현절은 주님의 현현, 세례주일은 주님의 세례받으심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세례주일의 정식 명칭은 주님의 세례주일입니다. 주님의 세례주일(Baptism of the Lord)은 그리스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건(누가복음 3:15-17,21-22)을 기념하는 교회력의 절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심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은 마태복음 3장과 마가복음 1장과 누가복은 3장에 나옵니다.
3. 세례는 하나님의 선포식입니다.
주님의 세례가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들려진 하늘의 말씀입니다. 에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입니다.
<마3:17>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
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막1:1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
하노라 하시니라
<눅3:22>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
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
하늘로 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마태), 하늘로 부터 소리가 나기를 (마가, 누가), 예수님의 세례가 주는 가장 크 의미는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가 주는 아주 귀중한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세례는 곧 우리들의 세례로 그 의미가 이어집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우리의 근본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누가 기뻐하는 사람입니까? 우리를 반겨주고 우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끈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설명하는 가장 첫 번 째 끈은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기뻐해주는 주변의 끈들입니다. 그 끈들이 사람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을 설명하는 끈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우리들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끈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라는 선포와 함께!
4. 세례는 하나님의 임재 선포하십니다.
세례가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재하였다고 설명합니다.
<마3:13~16>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1)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막1:9~10>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눅 3:21> 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1) 하늘이 열리고
2) 성령이 임재하고
3)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이 열렸습니다. 하늘이 공간인데 열릴 수 있습니까? 우리 교인 중에는 의사도 있고 과학자들도 많습니다. 박사 학위 소지자들도 많습니다. 하늘이 열리다니? 이성적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표현 같습니다. 그러나 눈을 보고 과학자는 H2O 물을 말하지만 시인은 솜털을 생각합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의 시작입니다. 하늘이 열리며 사람은 하나님과 끈을 맺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재하였습니다. 성령이 임재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임재하신 성령님은 예수님과 늘 함께 하셨습니다. 이것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재하시는 세례를 통하여, 사람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동행한다는 것입니다.
5. 세례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공생애를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공생애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임재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삶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 부분을 깊이 묵상했습니다. 공생애, 공적인 생애, 공식적인 삶, 공인으로서의 생활..... 그렇습니다. 세례란 사적인 삶이 아니고 공적인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그냥 아버지의 아들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례를 깊이 생각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방법을 바꾸는 Change By가 아니라 목적을 바꾸는 Change For입니다. 나를 위해 살던 삶을 바꾸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살던 삶을 바꾸어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 불공을 드리고 굿을 하다가 별로 효력이 없으니까 대신 얘배하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나를 위해 하던 모든 종교의식의 목적을 바꾸어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배의 목적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6. 세례는 생명구원을 선포합니다.
우리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요단강의 세례예식이 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중요한 순간 마다 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구원 을 이루셨습니다. 요단강물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보면서 아주 중요한 생각을 갖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구속사를 생각한 것입니다. 곧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노아홍수, 홍해바다, 요단강물입니다. 이 세 가지 물은 모두 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은 공통적으로 생명구원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노아홍수도 물에서의 구원입니다. 홍해바다도 출애굽의 절정입니다. 요단강물로도 가나안 입성을 위한 최후의 역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 앞에서 죽고 사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종교의식이 되버린 세례이지만, 요단강물에서 세례를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역사의 깊은 깨달음이었습니다.
7.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생명예식입니다.
세례에는 생명구원이 있습니다. 죽음과 삶이 결정되는 분기점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음이요 물 바깥으로 나오는 것은 생명입니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사건, 죽기 때문에 사는 사건이 세례입니다. 그래서 세례란 죽음과 연합하는 사건이며 생명과 연합하는 사건입니다.
<로마서 6:4~5>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죽음과 삶, 옛것과 새 것, .......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의 사건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옛 것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을 멋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생명예식입니다.
<엡4:17~24>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찐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8. 세례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 언약예식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언약예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입을 언약 예복입니다. '입으라'는 말은 언약신앙의 단어로 언약예복을 입으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세례가 언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연결단어이기도 합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옷을 바꿔 입는 것이지요.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세례를 그리스도로 옷 입는 예식으로 설명합니다.
<갈3:26~27>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우리는 옷을 바꿔입는 언약 신앙의 관점에서 세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언약예복을 입는다는 의미입니다. 종교개혁을 할 때 가톨릭의 7대 성사 가운데 개신교회는 두 개의 성사만을 성례전으로 가져옵니다. 성만찬과 세례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개신교의 성사가 된 것은 바로 언약식 때문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분을 입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목적을 입는 것입니다.
옷을 바꿔입는 언약예복에 대하여는 사무엘상 18장의 다윗-요나단 언약식이 좋은 모형입니다.
<사무엘상 18:1~4>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 아비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그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5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겉옷을 바꿔입었고 서로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를 바꿔입었습니다. 왕정시대의 옷은 신분의 상징입니다. 다윗은 신하의 옷을 요나단에게 주었고, 요나단의 왕자의 옷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이 겉옷의 교환을 통하여 다윗은 왕자가 되고 왕이 됩니다. 요나단은 신하가 되고 왕에 오르지 못합니다. 이처럼 언약식을 할 때 옷을 바꿔 입는 것은 신분이 교환되는 것입니다. 또 다윗과 요나단은 자기들의 군장(군복, 칼, 활, 띠)를 바꾸었습니다. 이는 서로의 생명을 지켜주던 무기들을 바꾼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자기들이 가진 무기로 원래 그 무기의 소유자였던 상대방의 생명을 지켜주는 목적교환을 의미합니다.
9.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
또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입니다. 물은 사람을 구원하는 표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선한 간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21절은 이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벧전 3:21)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우리의 죄악을 사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일뿐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우리의 더러운 죄를 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간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간구!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간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그리스도의 신분을 취하여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선한 간구를 드리는 것입니다.
10. 세례교인 사람이 중요합니다.!
세례주일의 첫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생명을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변화하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로마서는 한 사람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왔다. 아담은 사망을 가져오고, 예수님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롬5:12~21>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세례주일에 세례의 의미를 강론하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재하고 하늘의 소리가 선포됐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들의 세례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은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위탁하셨습니다.
<마28:16~20>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왜 그랬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처럼 생명을 가져오는 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 예수님처럼 공생애를 살면 생명을 가져오는 귀중한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을 세워갑니다. 그리스도와 옷을 바꿔입는 언약의 사람을 세워갑니다. 교회의 사명 1번은 무엇입니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11. 확실히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확실히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인도하시고, 사람을 구원하시고, 사람을 세우시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십니다. 우리 교회의 2012년도 주제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니, 그 귀중한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여 정했습니다. 그리고 그주제 아래 사람을 사랑하는 교회, 사람을 만나는 교회, 사람을 얻는 교회, 사람을 세우는 교회를 사역의 비전으로 정했습니다. 우릭 교회가 올 해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의 사명을 더욱 더 감당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명자,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성읍을 구원할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선지자를 찾고 계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나님은 성전에서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가시떨기 앞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소원은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사람을 찾기 위하여 아들을 주면서까지 사람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시기 위하여 이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말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자들이 됩니다.
(벧전 3:21)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우리가 다시 묵상해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재하시고, 하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오늘도 주님을 따라, 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는 하늘이 열립니다. 성령이 임재합니다. 하늘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우리의 공동체 속에 생명이 들어오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하나님이 세우시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생명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