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신32:7) 생기나라20호(2009-05-11)

우순(愚巡) 2009. 5. 11. 20:45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신명기 3장 7절)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비가 옵니다. 비오는 날엔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 번 주 생기나라 편지는 빗방울에 실려 마음의 이슬방울로 늦게 배달되고 있습니다. 가끔은 늦게 오는 편지가 더 기다려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관심이 없겠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동네 어귀 느티나무에 앉아 하늘바람 타고 노래 부르는 까치의 울음소리처럼 반갑습니다.

 

  기다림을 아시나요? 누군가를 기다려 보신 적이 있나요? 무엇인가를 기다려 보신 적이 있나요?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과 공간은 때때로 설레임의 시공이기도 하고 초조함의 시공이기도 합니다. 혹시 하나님을 기다려 보신 적은 계신가요?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의 믿음은 상당 부분 기다림을 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오늘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상동교회 교우들, 가족 친지를, 복지교회와 양도제일교회 성도들, 선교사님 부부들과 어린 자녀들, 삼일학원 내의 교직원 등등. 그리고 가슴 깊이 새겨진 고마운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 김광식 목사님의 며느님이 지으신 시구 같이 "길벗 찾아 곧은 길을 가는 순백의 구도자들"을 생각했습니다. 또 있습니다. 속정이 들어가는 사람들, 평생 변하지 않을 오랜 친구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사람들도 생각했습니다. 물론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리면서 생기나라를 쓰고 있습니다. 정말 제 성직서원처럼 평생 사랑하고 축복하는 목회자로 섬기기를 소망합니다.

 

   문득 비오는 날엔 차창 밖 빗소리를 가락 삼아 친구와 커피향에 몸을 싣고 음악의 도시 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순수와 이상의 영혼으로 마음이 통하는 길벗과 함께 진한 커피향에 묻혀 음악의 도시 빈의 선율에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어제 우리 상동교회는 어버이 주일로 지켰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효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말씀은 신명기 32장 7절이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효는 공자의 전유물같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생아였던 공자에게는 효의 개념이 추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효(孝)란 늙으신 아버지(老)을 업어주는 아들(子)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효는 기우제를 지내던 무당종교의 정치이념이었습니다. 유교의 유는 선비 유인데 사실 유란 한자어 儒는 사람(人)과 사람(而)이 비(雨)를 가운데 두고 기우제를 지내던 무속종교의 이념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교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기독교의 효도정신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효도는 말씀묵상과 역사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제 주일 설교를 위해 몇 가지 설교를 준비하다가 에배소서 6장의 말씀과 신명기 32장의 말씀을 붙들고 마지막까지 씨름했습니다. 주보를 만들 때 신명기 32장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부모를 대접하는 일도 효도이고, 부모님에게 좋은 옷을 사 주시는 것도 효도이며, 부모님과 함께 구경을 하는 것도 효도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효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는 묻고 들으라고 말합니다. 묻고 들으라! 들으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신앙적 관용구입니다. 신명기6장4절, 9장1절, 20장3절,26장17절,27장9절 등입니다.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32장 7절은 아버지에게 물으면 설명할 것이니 들으라는 말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차원이 아니라 옛날을 기억하는 것이고 역대의 연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역사인식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교훈입니다. 옛날의 기억을 교훈삼아 현재를 극복하고 미래를 창조한다는 말이지요. 정원식 박사의 "머리를 써서 살아라"라는 책은 유대인의 가정교육의 가치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현용수 박사의 "IQ는 아버지 EQ는 어머니 몫이다"는 책은 유대인의 가정교육이 쉐마 곧 "들으라"는 말씀의 교육임을 잘 설명해줍니다.

 

     묻고 듣는 가정의 대화 가운데 공통된 역사인식이 있고 축복의 계승이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효도가 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의 경험을 묻고 들으면서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축복을 계승하는 가정의 대화 가운데 진정한 효도가 있고 진정한 사랑이 있습니다. 여러분! 늙으신 부모님을 경홀히 여기거나 무시하거나 멸시하시지 말고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노인의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삶의 진한 허무와 소중한 가치에 대한 분별이 있습니다. 흘러간 세월 속에 경험한 역사의 아픔과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묻고 들을 때 우리의 가정은 더 따뜻해지고 더 소중해지고 더 큰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여러분! 저는 비가 오는 월요일 말씀을 묵상하며 여러분을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되시기를....생기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되시기를... 효도가 있는 가정에 생기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한 주내내 평안하세요^^

 

  목사 서철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