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깊은 영성은 꾸준한 영접이다.(요12:12~19) 2013-0324 주일

우순(愚巡) 2013. 3. 23. 17:55

깊은 영성은 꾸준한 영접이다

 

  <요한복음 12:12~19>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종려주일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주일입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오신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깊은 영성-꾸준함

 

오늘 나눌 말씀은 깊은 영성입니다. 깊은 영성은 꾸준함입니다. 꾸준한 예배, 꾸준한 기도, 꾸준한 헌신, 꾸준한 묵상, 꾸준한 봉사, 꾸준한 찬송, 꾸준한 감사, 꾸준한 사랑, 꾸준한 섬김, 꾸준한 은사, 꾸준한 헌금이 깊은 영성입니다.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변함없이 꾸준한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합니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영성, 영성 합니다. 하나님을 보았다. 신비한 체험을 했다.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그렇게 말합니다. 다 좋습니다. 다 옳습니다. 모두 다 귀한 체험이고, 모두 다 귀한 영성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소중한 영성은 꾸준함입니다. 웃었다 울었다 하지 않고 꾸준한 믿음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준비한 말씀은 꾸준한 영접입니다. 꾸준한 영접이 깊은 영성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깊은 영성은 꾸준한 영접이다" 라고 정했습니다.  제목을 이렇게 정한 것은 오늘이 종려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 하는 것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영접한 데서 유래합니다.

 

<요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종려주일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의 교훈은 꾸준한 영접입니다.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영접했지만 나흘도 못가서 변심한 사람들의 마음을 교훈삼아 꾸준하게 영접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꾸준한 영접이 중요합니다. 가장 강한 신앙은 꾸준하게 믿는 것입니다. 꾸준하게 예배하고, 꾸준하게 출석하고, 꾸준하게 기도하고, 꾸준하게 헌금하고, 꾸준하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의 기본은 예수님을 꾸준하게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했다가 마음을 바꿉니다.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잃어버립니다. 변함없는 영접이 중요합니다. 꾸준한 영접이 필요합니다. 평생 흔들리지 않는 꾸준한 영접이 중요합니다. 영성은 꾸준함입니다. 평생 변함없이 꾸준하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성도가 평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립니다.

 

 

2. 종려나무와 호산나 : 해갈의 생수

 

종려주일의 영접은 해갈과 생명을 위한 영접입니다. 종려주일의 상징은 종려나무 가지와 호산나입니다. 물론 나귀도 있고 겉옷도 있지만 종려나무와 호산나가 핵심입니다. 이 둘은 목마름의 해갈을 위한 상징입니다. 죽음을 극복하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종려주일의 예수님 영접 장면의 역사적 배경은 구약성경의 초막절 의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초막절이면 종려나무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이듬해 농사를 위한 '복된 장마비'를 구합니다.  이듬 해 농사를 위하여 '해갈의 단비' '생명의 단비'를 갈망하는 의식입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추수감사절로, 아르바 미님이라는 네 가지 식물을 흔들며 해갈과 생명의 단비를 갈망하는 절기입니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나무 가지, 시내 버들 네 가지를 흔들며 복된 장마비, 해갈과 생명의 복된 장마비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레23: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종려나무 가지는 메마른 광야에서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주고, 오아시스를 만나게 해줍니다. 생명의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성민들은 출애굽 한 후에 종려나무 곁에 장막을 쳤었습니다.

 

 <출15: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여리고 성은 종려나무 성이었고(대하28:15), 느헤미야는 초막절에 종려나무 가지 등으로 초막을 지으라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92편 12절은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리라고 찬양합니다. 또 성전의 이상을 보여주는 에스겔서 41장과 42장에서는성전 바깥 뜰과 문에 종려나무 형상을 새겨 넣었음을 알려 줍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해갈과 생명의 상징입니다.

 

호산나도 역시 해갈과 생명을 위한 초막절의 의식이었습니다. 초막절에는 번제단 남서쪽에 버드나무 가지를 세우고 기도문을 낭송하였는데, 이 때 모짜의 시냇가에서 꺽어 온 버드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순례자들은 번제단을 돌면서 시편 118편 25절의 기도문을 목청껏 낭송했습니다.

 

  <시118:25>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호산나는 "호쉬아 나"라는 히브리어로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초막절에는 항상 호산나 호산나 부르면서 번제단을 돌았습니다. 이는 말라 비틀어져가는 버드나무 처럼  죽어가는 자신들을 구원해달라는 생명을 향한 갈망의 외침이었습니다. 물을 구하는 외침은 생명을 향한 외침입니다. 초막절의 호산나는 다음 해 농사를 위한 비를 구하는 생명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런 외침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을 향하여 외쳐졌었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종려나무는 광야의 오아시스를 만나는 나무이고, 호산나는 추수감사절의 생명의 단비를 부르는 외침입니다. 이 둘은 물과 생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종려주일은 생명의 비를 구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초막절의 의미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아지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생명을 갈망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메시야를 갈망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마태복음은 무리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영접했다고 전합니다. 무리의 대다수가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찬송하며 영접했고 겉옷을 펴서 영접했습니다.

 

 <마21:6~9>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또 누가복음에 보면 그들은 기뻐하며 영접했습니다.

 

<눅19:37~38>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이처럼 종려주일의 영접,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우리 주님을 영접하는 환영식은 복된 장마비를 구하는 해갈과 생명의 영접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그 권세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생명의 권세요,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는 믿음의 권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자녀의 권세를 얻는 생명의 사건이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해갈의 생수를 마시는 사건입니다.   

 

 

3. 흔들림과 아쉬움

 

 

그러나 이렇게도 고귀한 영접의 절기 종려주일의 기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영접은 불과 나흘도 못가 변했고 예수님을 비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롱했고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이 종려주일의 흔들림과 변심은 두고 두고 짙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종려주일의 영접은 그리 오래 가지를 못했습니다. 불과 나흘도 못되어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하였고 바라바를 선택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토록 강력하게 환영하던 호산나의 외침과 종려나무를 흔들던 환영식이 죽음의 외침으로 살인의 선동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 대신에 바라바를 선택하였습니다. 자신들이 그토록 환영했던 예수님을 고독의 자리로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흔들렸고 변질되었습니다.  해갈과 생명의 갈망으로 영접하던 마음은 다 사라지고  해갈과 생명이 아닌 목마름과 죽음의 길을 택하기 시작했습니다. 두고 두고 아쉬운  상황입니다. 흔들림의 변심과 꾸준함의 아쉬움은 성경의 영원한 주제입니다. 에덴동산의 하와가 흔들리고 아담이 흔들렸습니다. 출애굽한 하나님의 성민이 광야에서 흔들리고 변심했습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죽음의 길을 선택해 갔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처럼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으며 파멸과 고생의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롬3:9~18>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가 다 양 같아서 제 각기 자기의 길로 갔다고 한탄합니다.

 

<사53:6>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꾸준함이 영성입니다. 꾸준함이 깊은 영성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변심하지 않고, 어리석은 양처럼 그릇 행하여 자기의 길로 가지 않고, 꾸준하게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마가 길을 물었을 때 길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신 길이신 예수님 자신을 그냥 따라가면 됩니다. 꾸준히 따라가면 됩니다. 주님을 한 번 영접했으면 흔들리지 말고 변심하지 말고 꾸준히 우리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가장 깊은 영성입니다.

 

종려주일에 우리가 묵상할 가장 소중한 믿음은 꾸준함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중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패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3장은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말씀합니다.

 

 <히3: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4. 흔들림 없는 꾸준한 영접

 

예수님을 꾸준히 영접할 수 있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좀 다른 말로 하면 이미 한 번 혹은 여러번 예수님을 영접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에게 붙들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살아갑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오른 쪽에 계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오른 팔을 붙드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시16:8>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사41:10~13>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2)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줄을 알라!  

 

우리의 수고는 우리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고 반드시 그 상급을 얻습니다. 하나님꼐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과 함께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고전15:57~58>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 목사의 위로를 받으라!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 성도들을 위로함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목사는 사랑과 축복의 종입니다. 성도는 목사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마음껏 누리십시오.  꼭 목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살전3:1~3> 1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2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 미혹되지 말라!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은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웁니다. 그래도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살후2:1~4>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 은혜를 받으라!

 

 은혜받은 자가 견고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부터 왔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에게서 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은혜를 받으니 은혜위에 은혜입니다.

 

  <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요1:16~17>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6)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 주님의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헐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워 주십니다.


 

 <골1:23>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7). 교회에 심겨져라!

 

시편은 복있는 자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복있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흔들지 않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막 지대에서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마르지 않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오늘의 시냇가, 도시 문명의 시냇가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통입니다.  교회에 뿌리를 내신 신앙, 교회에 심겨진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냇가는 물이 있습니다. 초막절에 호산나를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행진하는 의식은 결국 물을 구하는 의식입니다. 비를 구하는 의식이지요. 그래서 초막절에는 실로암 못에 가서 물을 길어 옵니다. 기혼샘의 우물을 히스기야 수로를 통하여 받아들인 실로암 못은 물이 충분합니다. 에스겔은 성전 동문에서 물이 흐르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교회는 우리 주님의 생수가 흐르는 곳입니다.  교회는 실롬암 못 보다도 생수가 더 충만합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님이시니 머리 되시는 예수님이 배는 예수님의 몸통은 교회입니다. 교회에는 예수님의 배에서 흐르는 성령의 생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7장입니다.

 

<요7:37~39>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5. 꾸준한 영접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

 

1)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라!

 

이제 마지막으로 준비한 말씀은 꾸준한 영접을 위한 마음 다스리기입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받습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롬10:8~1>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니라.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습니다.

 

<잠16: 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2) 사탄의 시험을 이기라!

 

이 마음을 사탄이 흔드는 것이 시험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여 흔들어서 중단하게 하고 포기하게 하고 낙심하게 만듧니다. 야고보서 1장은 시험에 대한 유명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약1:2~3>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욕심을 내려 놓아야 시험을 이깁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는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 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시험을 하시지도 않습니다. 오직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약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를 속이며 시험하는 사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약: 16>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3) 마음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우라!

 

오직 우리가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을 채우는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떄 우리는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욕심을 내려 놓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됩니다.

 

<빌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빌4:8~9>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4) 용서하라!

 

마음 다스리기의 절정은 용서입니다. 용서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름길입니다. 용서는 우리의 마음을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 미움과 증오와 원한의 악성 바이러스를 퇴치해야 합니다. 그 길은 용서입니다. 피해자의 상처는 가해자의 사과로 용서되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용서만이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용서는 치유다!"라는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용서는 우리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그러다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 고 화를 내기도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주 화를 내는 사람은 화를 덜 내는 사람보다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무려 세 배나 높답니다. 두통, 복통, 관절 질환, 만성 요통에 걸릴 위험도 높아집니다. 이런 분노는 사람도 죽일 수 있습니다. 용서는 분노, 원망, 자멸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돕습니다. 용서는 상처를 돌파합니다. 용서는 상처를 감추지 않고 치유합니다.

 

딕 티비츠 박사는 플로리다 병원과 스탠포드 의과대학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분노와 용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입증하는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해, 혈압이 높고 분노를 크게 느끼는 사람들의 상태를 다스리는 데는 용서가 효과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8주라는 기간 동안 용서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이 용서를 통해 분노와 적대감을 줄임으로써 고혈압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입니다. -딕 티비츠「, 용서의 기술」

 

헤밍웨이의 소설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스페인인 아버지가 집을 나가 마드리드로 간 아들과 화해하기로 다짐을 한다. 아버지는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엘리베랄’신문에 광고를 낸다.“ 파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가.”파코는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다. 아버지가 약속 장소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의 젊은 남자가 무려 800명이나 나와서 저마다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원하고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용서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용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고 김인수 장로는“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90%는 순종이며 사람에 대한 사랑의 90%는 용서”라고 했다. -[예화모음‘용서’],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이효진 씨의 간증은 용서의 위대함을 잘 보여줍니다.  제 어머니는 길을 건너시다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운전자는 저와 같은 20대 후반의 청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놀러가느라 들뜬 분위기 속에서 과속과 부주의로 사고를 낸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빠는 그 청년의 장래를 위한다면서 바로 선처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런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인데 그렇게 쉽게 용서해주면 어떡해요?”“너희들도 나중에 운전을 하다보면 가해자도 될 수 있고 피해자도 될 수 있단다. 젊은 사람 인데 장래도 생각해줘야 하지 않겠니?”저는 운전을 하게 되면서 아빠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의 실수로 저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실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당신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보면 어떻까요? 언젠가 당신의 실수도 그렇게 용서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이효진「, 내 약함을 자랑하라」

 

4)  긍정적으로 해석하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사건을 긍정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다 좋은데 한 가지가 나빠" 하는 것과 "한 가지는 나쁜데 다 좋아"는 아주 다릅니다.  브루노라는 수도사의 이야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어서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루노'라는 수도사가 기도하는데 밖에서 개구리들이 시끄럽게 울어댔다견디다 못한 수도사는 창문을 열고 '시끄럽다!'고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잠시 조용했다가 조금 지나니까 이제는 언덕 너머의 잠자던 개구리까지 울어댔다부루노 수도사는 너무 기도가 방해되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하나님, 개구리 때문에 기도가 안 됩니다저 개구리들을 어떻게 좀 해주세요.' 그때 마음속에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부루노야! 지금 개구리도 나를 위해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단다같이 기도하고 찬양하라.' 그 음성을 듣고서 다시 개구리 소리를 들으니  개구리소리가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었다. 수도사는 신이 나서 창문을 열고 같이 기도했다.

 

무엇이 방해되십니까? 인생은 해석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해석하면 얼마든지 기뻐하며 살 수 있습니다. 영국의 대설교가인 스펄전 목사님은 '그대의 염려를 버리고 은혜 깊으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라'고 했습니다.

사면이 막혀 있습니까? 그래도 기도의 통로는 열려있습니다. 기도는 지금도 홍해를 가르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립니다. 오늘은 주의 날입니다. 예배를 드림으로 막힌 기도의 통로가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4:6-7) -문병하 목사의 페북 글-

 

 

 

해석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재판장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도의 어느 지방에서 네 사람의 상인이 똑같이 돈을 투자하여 구입한 목화를 창고에 쌓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는 쥐가 많아 목화를 상하게 하므로 고양이 한 마리를 사 놓되 고양이 값을 4등분하여 지불하고 각자 고양이 다리 하나씩을 맡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고양이가 왼쪽 다리를 다치게 되어 그 다리의 주인이 기름 묻은 붕대를 감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난로에 너무 가까이 있다가 붕대에 불이 붙게 되었고, 심하게 뛰어다니다 결국엔 목화더미를 불태우고 말았습니다. 세 사람의 상인은 붕대를 감은 다리의 주인을 고소하였습니다. 붕대 감은 다리 때문에 불이 난 것이니 그 다리 주인이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붕대를 감은 다리에 불이 붙었을 때 나머지 세 다리가 움직였기 때문에 목화더미로 불이 옮겨 붙은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 세 다리의 주인이 배상해야한다.”유명한 랍비 힐렐은“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입장이 될 때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용서하지 못할 대 상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화모음‘용서’], 장자옥 목사 <간석제일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깊은 영성은 꾸준한 영접입니다. 종려주일은 우리에게 항상 짙은 아쉬움을 느끼게 합니다. 열렬한 환영식 이면에 싹트고 있는 흔들림의 변심입니다. 이 흔들림은 사탄이 심어준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얻은 자업자득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음 가운데 살기 원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그 승리의 길, 그 믿음의 길, 그 깊은 영성의 삶은 예수님을 꾸준히 영접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내려 놓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며,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성도들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십니다.  해갈의 생수를 마시고 생명을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