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 <김흥규 목사>
감리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
- 치유와 회복을 향하여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 1).
기독교 대한 감리회는 지금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이 중병이 도대체 언제 어느 때부터 시작하여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어 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냥 방치할 경우 거의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설령 이 중병이 교단의 몇몇 지도자들에게 국한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더라도 감리교 가족 전체가 겪어야 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이것은 마치 말기암 환자의 주변 가족들이 겪는 심리 육체적 고통과 흡사하다 할 것이다. 병을 앓는 이의 통증도 심각하려니와 가족들 역시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단장 선거로 촉발된 작금의 사태는 중증 말기암 환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앓고 치러야 할 고통의 과정과 너무도 흡사하다.
이미지 전도라는 말도 있듯이 가톨릭교회는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지도부 인사들의 좋은 이미지 하나 때문에 엄청난 전도의 특수효과를 누리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 감리교는 정반대로 잠재적인 전도 대상자들마저 상당수 잃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한국 감리교회가 당면한 가장 중대한 과제는 병든 감리교회를 신속히 치료하여 본래의 건강한 상태로 회복시키는데 있다. 다시 말해 ‘치유’(healing)와 ‘회복’(recovering)이 급선무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짧은 시간에 개략적인 스케치라도 하기 위하여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염두에 두면서 중병을 앓고 있는 한국 감리교회가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건강한 감리교회의 본래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웨슬리 형제가 이루었던 ‘원시 감리교 운동’이 건강한 감리교의 원형(archetype)일 것이다.
*병든 우리가 치유받고 회복되어야 할 건강한 감리교회의 본래적 모습: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성서적 성결(scriptural holiness)을 전 세계에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복음 전도 운동과 마음과 생활의 성결 운동, 그리고 사랑과 자선을 실천하는 사회적 박애 운동의 조합으로 나타나야 한다. 감리사-감독제도를 비롯한 일체의 직제와 조직, 기관 등등은 모두 이를 실천하기 위한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일 뿐, 우리의 궁극적 관심이 될 수 없다.”
1. 증세(Symptoms)
오늘의 감리교회는 어떤 증세로 신음하는가?
① 교단의 지도력 부재와 혼란으로 인하여 감리교 전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학연 등과 같은 각종 연고주의로 인하여 분열이 극심하다. 감독 선거는 물론이고 감리사 선거조차도 학연끼리의 대결로 인하여 지방이 화합하지 못하고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② 감리교 목회자, 감리교 평신도라는 자부심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감리교 가족이라는 일체감 역시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③ 총회를 비롯한 모든 의결 기구에 연급순, 연령순으로 대표를 배정하다보니 노화 현상이 뚜렷하다. 미 연합 감리교회의 경우 총대를 연회에서 투표로 선출할 때 여성은 물론이고 청년 등 각계각층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골고루 뽑아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케 한다. 오바바는 61년생인데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큰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한국 감리교회에서의 이 나이는 아직 어린애 취급을 받고 영향력을 미치기 어려운 형편이다. 모든 교권과 의사 결정이 원로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인습주의와 현상유지의 고루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타교단과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만든다. 젊은 감리교인들이 체념하는 교단에는 희망이 있을 수 없다.
2. 진단(Diagnosis)
감리교회가 오늘의 중병을 앓게 된 원인은 무엇이며 그 중병의 실체는 무엇인가?
① 사랑의 질서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황금만능주의(mammonism)와 가족주의(nepotism)의 중병에 걸렸다.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사랑의 질서를 잘 잡아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야 할 것을 반드시 사랑하고, 보다 적게 사랑해야 할 것을 너무 많이 사랑하지 않고(역으로 더 많이 사랑해야 할 것을 덜 사랑하지 않고), 어느 한 편을 더 많이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야 할 경우에 똑같이 사랑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쪽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성 어거스틴).
존 웨슬리가 15세나 연하인 소피아 합키와 실연한 것은 유명하다. 합키를 사랑했던 웨슬리였지만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숙망했던 인디언 선교가 걱정스러웠다. 결국 결별을 선언했는데 그 논리가 중요하다. 자신은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 사랑을 최고로 알아온 웨슬리 역시 자기 안에 사랑의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던 것이다.
② 신앙과 행위가 이원화되어 따로 떨어져 놀다보니 도덕불감증(moral apathy)의 중증에 빠졌다. 윤리의식의 쇠퇴로 죄가 죄인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완전 강박증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성결의 삶에 예민한 주의를 기울였던 존 웨슬리로부터 크게 빗나가고 있다.
③ 우리의 욕심과 시기심, 파당심 등으로 인하여 감리사나 감독과 같은 영적인 직분이 하나의 감투나 명예로 변질하여 다투는 분파주의(factionalism)의 중병에 걸렸다. 서로가 자기만 옳다는 독선주의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냉소주의가 난무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 몸 공동체라는 연대주의(connectionalism)가 눈에 띄게 쇠퇴하고 있다. 존 웨슬리는 결코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로부터 갈라져 나와 독자적인 교파를 만들 의도가 없었다. ‘교회 안에서의 교회’로 열심히 성결운동을 하다보니까 저절로(spontaneously) 생겨난 교파가 감리교이다. 오늘 우리의 목회가 개인적 혹은 집단적 사업(business)이 아니라 주님의 한 몸으로 된 교회의 사역(ministry)이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감리교회, 아니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바로 내 교회라는 공교회론적 인식이 절요한 때이다.
3. 처방(Prescription)
치명적인 중병에 걸린 감리교회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① 몇 가지 약으로만 가지고서는 안 될 것이며 때로 과감한 수술이 필요한데 특히 제도적인 수술이 긴요하다. 예컨대 유럽의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적 틀 안에서 형성된 감독제(episcopacy)가 우리와 같이 권위주의와 붕당주의, 온정적 연고주의로 표현되는 유교적 문화권 안에서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감리교 감독제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감독 직권 파송제를 스스로 포기한 이유는 이러한 문화적 폐해들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연회장 제도로 간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제도를 선택하든지 간에 우리 모두의 집단의식 수준의 고양 없이 오늘의 중병은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감리교회의 감독제도와는 매우 색다른 제도를 수용해온 영국 감리교회 제도의 허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고 특히 미국 감리교내에서도 감독제도를 반대해서 생겨난 ‘공화주의 감리교’(Republican Methodist Church) 등과 같은 사례들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총회에서도 젊은 층과 여성 등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감리교회의 언로를 트고 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②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서 은사에 맞는 인사가 이루어져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재가 배치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오늘의 감리교 사태도 따져보면 마땅히 교단의 수장이 되어야 할 사람인가에 대한 의혹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가.
③ 모든 허례허식과 과시주의를 버리고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감리교의 위신이 땅에 떨어져 있는 이때에 어떻게 하면 소아(小我)주의를 버리고 대승정신을 가질 것인가. 예컨대 가톨릭교회는 어떤 성당이 어떤 선한 일을 하든지 간에 가톨릭교회라는 공교회를 앞세운다. 지구촌에 흩어져 있는 일체의 가톨릭교회가 하나의 다 같은 공교회라는 의식이 너무도 뚜렷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는 언제나 삼성이나 현대와 같이 사적인 대기업과 같이 개교회중심이라서 명성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 교회, 소망교회, 금란교회, 광림교회 등등의 개교회 브랜드만이 부각되어 인구에 회자되는 실정이다. 실추된 감리교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개교회가 어떤 선한 일을 하더라도 이와 같은 개교회의 이름이 아닌 우리 감리교, 아니 우리 기독교라는 보다 포괄적인 이름이 더 드러나게 할 수는 없을까.
4. 예후(Prognosis)
우리 감리교회가 걸린 중병이 어떤 경과를 거쳐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을까? 더 악화되어 아예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병이 되어 사멸에 이를 것인가? 아니면 상당 부분 완화되고 호전되어 치유와 회복의 기미가 엿보일 것인가? 대답은 우리 각자의 태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당신이 단 하나의 일을 할 수 있다면 공부만 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한 영혼을 잃어버리는 죄를 짓느니 차라리 세상에 있는 모든 도서관들을 내팽개치고 말 것입니다."(If you can do but one, let your studies alone. I would throw by all the libraries in the world, rather than be guilty of the loss of one soul.) ― In Wesley's Large Minutes(1770)
“다른 모든 교리들을 포함한 우리 감리교회의 중심 교리는 회개와 믿음과 성결입니다. 회개는 종교의 현관이며 믿음은 종교의 문이며, 성결은 종교 그 자체입니다.”(Our main doctrines, which include all the rest, are three, that of repentance, of faith, and of holiness. The first of these we account, as it were, the porch of religion; the next, the door; the third, religion itself.) ― In Wesley's The Principles of a Methodist Farther Explained(1746)
“하나님의 계획은 … 새로운 교파를 세우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국, 특히 영국 국교회를 개혁시키는데 있었습니다. 바로 성서적 성결을 영국 전체에 확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God's design was … not to form any new sect; but to reform the nation, particularly the Church; and to spread Scriptural holiness over the land.) ― In Wesley's Large Minutes(1770)
“믿음은 사랑하기 위한 방편이며, 사랑은 선을 행하기 위한 방편이며, 선행은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한 방편이며, 성결은 행복해지기 위한 방편이다.”(Faith is a means in order to love, just as love is in order to goodness, just as goodness is in order to holiness, just as holiness is in order to happiness.) ― By Albert Outler's Theology in the Wesleyan Spirit(1974)
金興圭 목사(내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