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회의 변화를 위한 신학적 입장”
논찬>
“감리교회의 변화를 위한 신학적 입장”
장학일 목사의 “감리교 신앙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와 김흥규 목사의 “감리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에 대한 느낌과 물음.
서철 목사 (상동교회)
<여는말>
저는 두 목사님의 글을 읽은 느낌과 물음을 정리했습니다. 장학일 목사님의 “감리교 신앙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와 김흥규 목사님의 “감리교회는 어떤 교회여야 하는가?에 대한 느낌과 물음입니다. 두 분 목사님의 글이 주장하는 공통점과 상이점을 생각해 보았고, 우리 감사람이 지향하는 방향과 감리교회의 현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주로 생각한 것은 “감리교회의 변화를 위한 신학적 입장” 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펴는말>
1. 공통점
두 분 목사님의 글에는 “웨슬리와 웨슬리 형제의 원시 감리교 운동”을 건강한 감리교회의 원형과 돌아가야 할 자리로 설정하셨습니다. 이 점은 대단히 소중하고 당연한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학일 목사님은 구원론의 재정립, 성령의 역사, 실천적 영성을 주요한 신학적 입장으로 제시하시면서 성결과 사랑의 사회성화를 대안으로 제시하셨습니다.
김흥규 목사님은 ‘치유와 회복’이라는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시고 병든 우리가 치유 받고 회복되어야 할 건강한 감리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예수 믿고 구원받아 성서적 성결을 전 세계에 확장시키는 데” 두셨습니다. 그와 같은 결론을 위하여 오늘의 감리교회의 증세(Symptoms)를 진단(Diagnosis)하고 처방(Prescription)하시면서 예후(Prognosis)까지 제시하셨습니다.
두 분 목사님의 발제는 “웨슬리 신학(신앙)의 회복과 원시 감리교회 운동의 회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성화를 회복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2. 상이점
두 분의 글은 원론적으로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각론적으로는 미세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학일 목사님의 글은 “변화를 위한 제안”이기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삼아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를 웨슬리의 사회성화로 설정하시면서 타이틀처럼 감리교(회)의 신앙적 변화 곧 영성회복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흥규 목사님의 글은 장학일 목사님의 글과 원론적인 일치와 동일한 방향성을 보이시면서도 실제적인 조직 문제를 제기하시고, “공화주의 감리교’(Republican Methodist Church) 등과 같은 사례들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십니다. 또한 가톨릭의 예를 들면서 Image Mission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상이점은 배치되는 다른 점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다른 점이라고 느껴집니다. 제 생각에는 두 분의 강조점이라고 보여 집니다. 영성회복과 제도개선이라는 두 가지 변화의 축을 말씀하시면서 글의 흐름이 영성회복(장학일)과 제도개선(김흥규)을 조금 더 강조하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그러므로 이 둘 -영성회복과 제도개선-을 두 분은 양자택일로 보지 않으시고 순차 보완으로 설명하신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3. 물음
1. 장학일 목사님에 대한 물음
목사님의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회성화로의 실천적 영성(practical divinity)은 ‘주님의 주권’(Lordship)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면서, 그에 반응하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데 있기 때문에 “선행적 은총→회개→칭의→신생→성화→기독자의 완전”이라는 ‘구원의 완성을 향한 행보’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지금의 문제가 사회적 성화의 결여나 도덕적 불감증의 한계적인 약점 때문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아주 근원적인 구원론의 문제인 ‘주님의 주권’(Lordship)‘이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데,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듣고 싶습니다.
제가 구원론의 문제를 묻는 것은 웨슬리 신학의 좌표설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홍기 교수와 이선희 교수의 논쟁에서 촉발된 차이점처럼 칭의와 성화 사이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사이에, 오직 믿음과 선행 사이에 미묘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웨슬리의 신학적 입장이 주님의 주권이 전제된 사회적 성화임에도 불구하고 자칫 잘못하면 주님의 주권 없는 인간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사회적 성화를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웨슬리 신학이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의 좌표를 설정하는 구분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며, 웨슬리 이후의 현대 웨슬리 신학이 안고 있는 하나님 존재의 우선성에 대한 모호성을 극복하는 계기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2. 김흥규 목사님에 대한 물음
목사님의 글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개혁의 본질성을 언급해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목사님의 글에는 건강한 감리교회 정체성이 “원시 감리교 운동”에 있음을 암시하시고 계신 데 좀 더 미세적인 설명이 보완되었으면 좋겠습니다.원시 감리교회 운동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상세하게 알고 싶습니다. 영국 감리교회와 미국 감리교회의 차이점을 알고 싶고,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의 웨슬리 신학의 좌표설정이 어디쯤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울러 목사님은 “개인적인 복음전도-마음과 생활의 성결운동-사랑과 자선을 실천하는 사회적 박애운동의 조합”을 원형으로 제시하시면서 감리교회 조직은 은혜의 수단일 뿐 궁극적 관심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궁극적 관심인 “복음-성결-성화”를 가능케 했던 원시 감리교 운동의 동인(動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 지 듣고 싶습니다. 혹시 성령론과 연결시켜 말해주실 수 있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목사님에게는 두 번 째 물음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영성회복과 함께 제도개선을 제안하시면서 “공화주의 감리교’(Republican Methodist Church)”를 말씀 하셨습니다. 공화주의 감리교란 구체적으로 어떤 감리교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또 공화주의 감리교는 감리교회 정신에 부합하는 건강한 감리교였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이와 아울러 문제가 되고 있는 감리교회의 공교회성에 대한 목사님의 고견도 듣고 싶습니다. 흔히들 웨슬리는 성공회를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감리교회는 성공회로 회귀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통합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독립했다면 정체성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은 가톨릭을 예로 드시면서 Image Mission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우리 감리교회의 변화를 위하여 우리가 제시해야 할 Image Mission의 구체적인 실례나 대안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감사람 목사님들에 대한 물음
저는 두 분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가 치열한 논쟁을 통하여 정리하고 넘어 가야할 몇 가지 과제를 묻습니다. 웨슬리 신학의 좌표 설정에 관한 분명한 공통이해와 역사인식입니다.
1) 예수의 믿음과 예수에 대한 믿음:
감게판(감리교 자유게시판)을 달군 논쟁의 밑바탕 중 하나는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과 예수에 대한 믿음(Faith about Jesus)의 온도차입니다. 전자는 예수를 스승으로 보는 역사적 예수 따르기의 신학적 입장이고, 후자는 예수를 대속자로 보는 복음적 예수 믿기의 신학적 입장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희랍어 pistus chrisutus(또는 Jesus)의 번역상의 차입니다. 소유격으로 번역하여 예수의 믿음(Faith of Jesus)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대격으로 번역하여 예수에 대한 믿음(Faith about Jesus)으로 할 것인지 입니다. 우리 감리교회 신학의 좋은 성화론이 신학의 문을 열어 놓은 장점도 있지만 겨울이 와도 닫을 수 없는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웨슬리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분명히 정리해야 합니다.
2) 감리교회사에 대한 역사인식 :
제가 알기로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원시 감리교회 운동은 영국에서는 소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소멸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 감리교회 신학의 정체성이 “가장 아름다운 중용의 길(The best beautiful middle way)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혹시 좌표설정이 불안하여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은 없는지를 냉정하게 고찰해 보아야 합니다. 아울러 웨슬리 신학의 지류중 하나인 오순절 성령파 교회들이 웨슬리-플레처로 이어지는 ‘성령세례’론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는 데, 이 점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조직과 전통을 말하면 가톨릭의 견인력이 강하고, 성경과 종교개혁을 말하면 개혁교회의 견인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통합과 중용의 공동체이지만 내재적인 한계때문에 잘 못하면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중간이 되기 쉬운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지금의 감리교회 정신은 사회법정에서 망신당하는 아픈픈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영국 감리교회도, 미국 감리교회도, 그리고 조만간 이대로 간다면 한국 감리교회도 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은 우리 공동체 감사람이 웨슬리의 위대한 감리교회 운동을 되살릴 강력한 힘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분명한 역사인식과 좌표설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3) 제도개혁인가 제도개선인가? :
다시 말하면 개선인가 개혁인가입니다. 개선이라면 보완하는 것이고 개혁이라면 변혁하는 것입니다. 개선을 지향하나다면 제도권 안에서 합법적인 틀고치기 과정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혁이라면 우리가 가진 모든 기든 기득권을 내려 놓고 제도권 맊으로 나갈 결단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 모임은 용두사미가 되어 실패할 것입니다. 결국 그렇다면 우리가 가야할 방향성은 웨슬리 신학의 건강한 원시 감리교회 운동을 살리면서도 어떻게 미래지향적인 감리교회를 꿈꿀 수 있는 지 분명한 비전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감리교회의 신학적 입장, 지향하고 있는 비전, 추진하는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는 우리 모임이 당면한 현안들을 햐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기구를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무국과 정책실과 영성국을 두어서 개혁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무국은 모임을 주선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일을 맡고, 정책실은 개선혹은 개혁할 아젠다(agenda)를 개발하고, 영성국은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는 일과 기도회를 주관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 감리교 목회자 대회와 순회 기도회등을 인도하면서 개혁 입법을 성안하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 과정 속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직무 대행이 들어서면서 재선거로 가는 과정을 하나님이 주신 개혁의 기회로 삼아 몇 가지를 우선해야 합니다. 선입법후선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치유와 통합을 위한 참회의 감리교 목회자 대회를 추진하고, 웨슬리 복음주의에 입각한 원시 감리교회 운동을 회복하는 개혁 입법 연대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것이 잘 될려면 전략적 기획과 전술적 연대가 꼭 필요합니다.
<닫는말>
논찬자로서 두 분 목사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두 분의 발제물을 여러 번 정독하면서 새삼 많은 것을 배웠고 아주 소중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좀 더 치열하게 토론을 하고 합의를 해 나간다면 아주 건강한 감리교회 정체성과 구체적인 제도개선(혹은 제도개혁)을 이루어 가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런 자리에 함께 하신 우리 감사람 목사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서없는 논찬을 들어주신데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바라기는 우리 감리교회가 하루 속히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소생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