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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기신앙(3)-“생기예배론(生氣禮拜論)”

우순(愚巡) 2006. 4. 15. 19:04
 

생기신앙(3)-“생기예배론(生氣禮拜論)”


서철


   생기신앙의 세 번 째는 “생기예배론”이다.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성례전이다. 예배를 설명하는 용어가 셋이다. ‘예배보다’와 ‘예배드리다’와 ‘예배하다’가 있다. 언어가 실제를 꼭 규정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설명하는 것이기에 언어가 예배의 실제 행위와 동일하지는 않다. 즉 예배 본다고 예배를 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배보는 할머니가 실제로는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는 실제를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를 돕는다. 그런 점에서 예배는 구경한다는 의미가 진한 ‘보다’ 나 일방적인 독백의 ‘드린다’ 보다 함께 이루어지는 ‘하다’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실제로 대표적인 예배성구인 요한복음 4장 24절은 ‘예배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예배는 하는 것이다. 영어 성경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For God is spirit, so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여기서 말하는 “in spirit and in truth”는 헬라어 성경 원문의 'en pneumatikos kai en aletheia"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직역을 하면 ‘성령에 이끌리어’ 그리고 '진리에 이끌려서‘라는 뜻이다. 희랍어 en은 이끌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예배는 성령과 진리되시는 예수님에 이끌려서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다. 우리는 이 짧은 성구에서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묵상할 수 있다.


   생기신앙은 성령과 진리이신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서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앙이다. 왜 하나님이신가? 우상에게는 생기가 없고 하나님에게만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생기가 없는 우상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준하고 무식하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야곱의 분깃은 이 같지 아니하시니...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예레미야 34장 14절-16절) 이 성경 구절은 예레미야 51장15절-19절에서 반복된다. 생기가 없는 우상 숭배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선지자 하박국도 우상에겐 생기가 없다고 선언한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하박국 2:18-20) 우상숭배와 참 예배의 갈림길에 생기의 하나님이 계시다.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신 하나님의 산 호흡은 하나님에게 들어 있는 속성이다. 즉 하나님에게는 생기가 있지만 우상에게는 생기가 없다. 그러므로 생기를 호흡하여 생령이 되고 다시 살아나려면 생기의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한다.


  이처럼 생기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공통적으로 소유한 존재성이다. 그러나 이는 대등한 가치를 지닌 동시성의 존재성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가지신 것을 인간에게 나누어 주신 존재성이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에 의해서만 생기를 공급받게 되고 살아 있는 영적 존재 곧 ‘생령’이 된다. 따라서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것은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며 이는 생기를 공급받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건이 예배이다. 때문에 생기신앙은 예배를 아주 중시한다. 예배가 있는 곳에 생기신앙이 있다. 예배가 온전한 곳에 생기의 바람이 분다. 교회는 예배공동체이다. 살아 있는 예배가 되기 위하여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로마서 12장 1절) 예배를 통해 마른 뼈 같은 우리들은 생기의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충만히 공급받게 된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생기가 충만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산 예배를 준비하고, 산 예배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라! 산 예배에 참여하기를 즐겨 하고, 산 예배에서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산 제사를 드리라! 생기의 바람이 오는 것을 체험 할 수 있다.


  생기신앙은 예배를 중시하는 신앙이다. 예배는 형식적인 종교행위가 아니라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는 사건이다. 그리고 에스겔서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생기의 바람이 불어 왔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될 때 생기의 바람이 불게 된다. 때문에 진정한 예배, 살아 있는 예배는 말씀중심의 예배이다. 이 말씀 중심의 예배는 세 가지 말씀이 아주 중요하다.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는 일이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 다음 선포되는 말씀은 강론이 예배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육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성찬예전이 강조되어야 한다. 우리는 말씀묵상의 예배,. 말씀강론의 예배, 성찬예전의 예배를 통해 생기를 호흡함으로 생령이 되고 살아날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예배는 생기가 충만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예배이다.



출처 : 생기묵상원
글쓴이 : 생기목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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